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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Madame Bovary:1857)

2013.07.28 18:06

이규 조회 수:1678


   해설
  "보바리 부인"은 플로베르가 1852년부터 1856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시골 풍속"이라는 부제로 출판되었었다.
  "보바리 부인"이 출판된 이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플로베르와 출판사의
편집자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의 초판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었다.
출판사는 "보바리 부인" 출판 후에 반드시 물의가 있을 것을 예상하여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간단히 요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도덕 관념은 이 소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 문학사상 획기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법정 투쟁은 플로베르의 승리로
마감했고 그 이듬해인 1857년에 원본이 햇빛을 보았으며 플로베르는 일약
일류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보바리 부인"은 평범한 시골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생활과 환경을
정밀하게 표현한 것으로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사실주의 운동의 기치가 된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의 로맨틱한
영혼에 대한 동경과 그녀를 둘러싼 지극히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파멸을 묘사함으로써 꿈과 현실의 차이가 빚어 내는 환멸
그리고 그 환멸 속에서 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비극적인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현실이 꿈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꿈이 현실과 너무 먼 곳에 있을 때 인간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을 통해서 플로베스가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자신의
꿈에 충실했을 때 맞게 되는 현실적인 파멸을 경고하려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파멸을 맞게 되더라고 꿈을 꾸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그려 낸 것인가?
진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초라하며 비극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에 대해 의미 심장하게 언급한 말을
기억해보자. "보바리 부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작가 약전
  플로베르는 1820년 루앙 시립 병원 외과 부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같은
해에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도 탄생했으며, 또한 그도 의사의 아들이라는 점은
일치된다) 병원에서의 견문이 작가 수업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며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의사 샤를의 이야기도 병원 생활에서 얻은 것이 아닌가 추축된다.
  그는 예술에 몸을 바쳐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플로베르의
문학상의 위치는 사실주의의 완성자라는 점에 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비톨 위고를 숭배했으며 열 살 전후에 이미 몇 편의
희곡을 써서 친구들을 모아 놓고 연극을 했다. 문학 방면에는 조숙했으나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특히 수학을 못하여 저능아가 아닌가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위고를 숭배하면서도 위고의 낭만주의와는 반대되는
사실주의의 주창자가 된 것이다.
  "우리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는 단 하나의 정확한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에 맞는 표현에는 하나의 형용사밖에 없다"라고 한 말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플로베르에게는 문학이란 곧 문장이고 표현이었던 것이다.
  "가두 마차의 말이 그에 잇따른 또 그에 앞선 그 외의 오십 필의 말과 어느
점이 다른가를 단 한 마디로 말해 주게"
  그의 제자 모파상에게 한 말이다. 어디까지나 현실을 정확하며 적합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는 의미이다.
  작품으로 "성 앙투안의 유혹", "살람보", "감정 교육", "브바르와 페규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