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AND

한국어

Knowledge

오늘:
379
어제:
358
전체:
732,338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1891)

2013.06.06 21:34

이규 조회 수:3742

  해설
  하디는 영국 소설계에서 조지 메러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와 더불어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존재였다. 4편의 장편 소설과 4권의 단편집 8권의
시집(918편의 시 수록)과 2편의 서사극시를 남겼으며 하디 문학의 금자탑을 이룩한
"테스"로 이름을 떨쳤다. "테스"가 많은 애독자를 가지게 된 까닭은 인생의 비극적인
실상을 직시하는 하디의 페시미즘 사상이 불안과 동요의 도가니 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의 시류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기장 즐겨 읽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여기서 "테스"가 발표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잠깐 살펴보자 이 때는 치기와
위선의 시대였다. 민주적 경향과 과학 정신으로 조성된 물질 문명의 세례를 받은
속물주의와 체면주의가 판을 치던 속된 분위기였다. 이런 시대는 윤리관이나 도덕관이
지극히 편협해지기 마련이어서 인간성을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이
아니었다. 하디는 편협한 윤리 도덕관에 반기를 들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윤리
도덕 정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시도하였다.
  하디는 "테스"에서 두 개의 순결성을 보여 준다. 나아가 육체의 순결성보다 정신의
순결성을 위에 두고 있다. 테스가 알렉에게 빼앗긴 육체의 정조는 한낱 외형의
순결성을 상실했기 따름이지 본연의 순결성은 여전히 테스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기본 골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결국은 알렉 살해의 책임은 테스를
둘러싼 환경의 편협함의 결과로 돌리는 것이다. 테스가 놓여 있는 환경이란 야수적인
알렉과 이기적이고 결벽증인 에인젤의 횡포에 의해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이 테스의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테스의 불행은 스스로의 성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디는 인생을 하나의 비극으로 인식한다.
우주에는 인간사에 무심한 맹목적 대의지가 있고, 지상의 인격들 제각기의 소의지가
있다. 인간의 소의지는 우주의 대의지에 휩쓸려 결국 자멸이란 비극을 치르게
마련이라는 것이 하디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테스"가 발표되었을 때 타임즈는 "테스"에 대하여 인습적 관념을 다루는 데
대담하고 애틋한 비애감을 서리게 하여 지극히 감동적인 비극감을 자아냈다고 평했다.
시인 윌리엄 윗슨 경(Sir William Wastson)은 테스는 인간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의 폭을 항상 넓혀 준다고 했으며 웨스트민스터의 평론가는 조지엘리가 별세한
뒤의 최고 역량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테스"는 출판된 지 3년 만에 각국어로 번역되었고 그 후 전문적인 연구 서적과
논문도 많이 발표되었다. 또한 영화와 연극으로 상연되었다

  작가 약전
  하디는 1840년 6월2일 영국 남부 지방 웨섹스의 중심지 도셋의 하디북햄프턴이란
삼림 지대와 황무지 사이의 두메 초가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산된 순간
사산인 줄 알고 한구석에 내버렸던 것을 이웃의 거들던 아낙네가 의사에게 "죽다니요!
가만 계세요 꼭 숨을 쉴 테니!"하고 외치는 바람에 다행히 소생했다.
  7, 8세 때에 친구들은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까 하며 신나게 이야기했지만 하디는
어른이 되고 싶지도, 무엇을 갖고 싶지도 않았으며, 지금 그 자리에 그냥 남아 있고
싶을 따름이었다. 야심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하디를 목사로 만들고자 했으나 하디가 원하지 않으므로 건축가로
출세시키려 했다. 18세 때에는 도체스터의 교회 건축가 조힉스의 제자가 되어 5년 동안
건축에 관한 경험을 쌓는 한편 친구의 지도를 받아 고전 중에서도 특히 희랍 비극과
영문학을 탐독하여 차츰 글을 쓰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일리아드를
읽고 낮에는 건축 일에 시달리고 일이 끝나면 바이올린을 들고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에 바빴다.
  21세 때는 당대 굴지의 건축가인 부룸 후일드의 조수로 런던으로 오게 되어 10년간
과학적 사회적 문학적 사조를 접하였다
  1865년에 시를 쓰기 시작 이듬해 잡지상에 투고했으나 반환되는 바람에 시작의 붓을
꺾고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865년에 "내가 집을 지은 이야기"라는 단편을 발표했으며 1871년 "궁여지책",
1872년 "푸른 숲 그늘에서", 1873년 "푸른 눈동자"를 각각 발표했고 1874년
"광란의 무리를 떠나서"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874년 엠마 라비니아 깁후드 양과 결혼했다. 1878년 하디의 4대 걸작의 하나인
"귀향"을 발표 그 후 "케스터브리지 시장", "웨섹스 이야기", "귀부인들", "테스",
"아내를 위하여" 등을 발표하였다. "테스"가 간행되자 에인젤과 같은 과거가 있는
아내를 가진 남편들로부터 그리고 테스와 같은 과거를 지닌 아내들로부터 하디에게
많은 서신이 쇄도하였다
  1928년 1월11일 88세로 세상을 떠날 �까지 14편의 장편 소설과 4권의 단편집과
8권의 시집과 2편의 서사극시를 냈다
  생전에 이미 그의 문학적 공헌이 인정되어 애버딘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70세에는 국왕으로부터 유공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