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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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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15:22
<백이, 숙제의 양보와 죽음>
무릇 학자의 서적은 대단히 많지만 그래도 육예(六藝)를 살펴서 확신을 얻는다. 『시(詩)』, 『서(書)』에 결손 부분이 있지만 우(虞)나라, 하(夏)나라의 기록은 볼 수 있다. 요(堯)임금이 자리를 물려주려 하면서 우임금과 순임금에게 선양했고, 순과 우의 (선양) 과정에서는 악목(嶽牧)이 모두 추천하여 우를 자리에 두고 시험했는데 수십 년 동안 직무를 주관케 하여 그 공이 드러난 다음 정치를 넘겼다.

천하는 가장 중요한 그릇이요, 제왕은 가장 큰 법통이기에 천하를 전한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는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보하려 했으나 허유는 받지 않고,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도망가 숨어버렸다. 하나라에 오면 변수(卞隨), 무광(務光)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어째서 칭송되고 있는 것일까?”라고 말한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산(箕山)에 올랐는데 그 위에 허유의 무덤이 있다고들 했다. 공자는 고대의 어질고, 성스럽고 현명한 사람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나라 태백이나 백이의 이야기를 상세히 했다. 내가 허유와 무광의 의로움이 지극히 높다고 들었는데 그 문장에는 거의 언급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공자는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지난 원한을 기억하지 않았기에 원망의 기운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어짊을 구하면 어짊이 얻어지니 원망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나는 백이의 뜻을 슬프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시 구절을 보니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들의 전기의 내용은 이렇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孤竹) 국군의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숙제를 세우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양보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다.”라 하고는 달아나버렸다. 숙제 역시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고 도망갔다. 나라 사람들이 가운데 아들을 세웠다. 이 무렵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모신다는 말을 듣고는 가서 기대려 했다. 도착해보니 서백은 죽고 무왕(武王)이 나무로 만든 신주를 싣고 문왕(文王)으로 추존한 다음 동쪽으로 주(紂)나라를 토벌하려 했다.

백이와 숙제는 말머리를 막아서서는 “아버지가 죽어,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칼을 들다니 효라 할 수 있겠소이까? 신하로사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라고 했다. 좌우에서 이들을 죽이려 하자, 강태공이 “의로운 분들이다.”라 하고는 한 쪽으로 모시게 했다.

무왕이 은나라의 난리를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받들었지만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고비를 따서 먹었다. 굶어 죽기에 앞서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랬다.

저 서산(西山)에 올라
그 고비를 뜯는다.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 우, 하는 이미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디로 돌아 갈까나?
아, 우리는 죽음의 길로 간다.
가련한 운명이여!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렇게 볼 때 원망한 것인가, 아닌가?

<천도를 의심하다>
혹자는 “하늘의 도(道)는 치우침이 없어, 늘 좋은 사람을 돕는다.”라고 했다. 백이나 숙제를 좋은 사람이 할 수 있지 않나? 인덕을 쌓고 그렇게 착하게 행동했는데도 굶어 죽다니! 그리고 70명 제자들 중에서 공자는 유독, 안연 혼자만 배우길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안연도 평생 곤궁 속에서 살았고, 술지게미 같은 음식도 마다 않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상한다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도척(盜跖)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를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결과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것은 무슨 덕을 따랐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크게 드러난 예들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도 그 품행이 도를 벗어나고 오로지 금기시하는 일만 저지르고도 평생토록 즐겁게 살고 부귀가 대대로 끊이질 않는 자들이 있다. 땅을 골라서 밟고 때를 봐가며 말을 하고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면 분을 터뜨리지 않았는데도 재앙을 만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몹시 곤혹스럽다. 이른바 하늘의 도란 것이라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공자가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각자의 뜻에 따를 뿐이다. 그래서 “부귀라는 것이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채찍을 잡는 일이라도 내가 하겠지만 구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온통 흐린 다음에야 깨끗한 선비가 나타난다. 누구는 저것을 중시하고 누구는 이것을 경시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공자는 “군자는 죽은 뒤 명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가의(賈誼)는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에 죽고, 열사는 명성에 죽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자는 권세에 죽고 보통 사람은 목숨을 탐한다.”고 했다.

“빛이 나는 물체는 서로를 비추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를 이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성인이 있어야 만물이 뚜렷해진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어진 사람들이긴 했지만 공자가 있어서 그 이름이 더욱 드러났다. 안연이 공부에 독실하긴 했지만 천리마 꼬리에 붙음으로써 그 행동이 더욱 뚜렷해졌다. 동굴 속의 선비들의 진퇴도 이와 같았지만 그 명성은 연기처럼 사라져 입에 오르지 않았으니 서글프구나! 골목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 덕행을 갈고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한다면 청운의 선비에 붙지 않고서야 어찌 후세에 명성을 남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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