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AND

한국어

All things

오늘:
579
어제:
1,070
전체:
741,262

문화 운해목

2015.03.11 20:05

셀라비 조회 수:3542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
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
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
만을 들어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
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이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
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
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아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마알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
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
는 물결인 것을.(불교신문, 1968. 4. 21.)


무소유 - 법정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3 박석정 졸업 연주회 Repertory (한예종) LeeKyoo 2018.11.09 13099
142 추천 영화 leekyoo 2017.12.13 11604
141 행복론 LeeKyoo 2018.01.01 9270
140 와일드 캠핑 LeeKyoo 2018.06.27 8953
139 2017대선... LeeKyoo 2018.08.17 8813
138 琵琶行 - 白居易 [1] leekyoo 2017.09.01 8565
137 Sultans Of Swing- Dire Straits LeeKyoo 2019.01.01 8017
136 coffee [1] leekyoo 2016.06.04 7759
135 독감 LeeKyoo 2016.12.17 7497
134 하루에 벌어지는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소식을 기다립니다. 셀라비 2012.10.26 7413
133 기호 이름 이규 2013.09.08 7227
132 시간 leekyoo 2017.10.15 6463
131 취하면 기분파 되고 했던 말 또하는 당신. leekyoo 2017.12.13 6044
130 Donde Voy leekyoo 2017.10.02 5662
129 생각 정리 leekyoo 2017.02.25 5369
128 내 맘대로 기사 LeeKyoo 2018.06.21 5269
127 Wham! - Last Christmas LeeKyoo 2019.12.22 5253
126 사랑하기 위하여 물어야 할 질문들. leekyoo 2017.12.13 5163
125 구글링 활용법 file 셀라비 2014.11.09 5133
124 Elvis Presley, Martina McBride - Blue Christmas LeeKyoo 2019.12.22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