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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월의 시

2013.08.02 22:36

이규 조회 수:2917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오세영·시인, 1942-)


 

8월의 나무에게

한줄기
소낙비 지나고
나무가
예전에 나처럼
생각에 잠겨있다

8월의
나무야
하늘이 참 맑구나

철들지,
철들지 마라

그대로,
그대로 푸르러 있어라

내 모르겠다

매미소리는
왜, 저리도
애처롭노.
(최영희·시인)


 

8월 한낮

밭두렁에 호박잎
축 늘어져 있는데

사철 맨발인 아내가
발바닥 움츠려 가며
김장밭을 맨다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애가 타서 울어대는
청개구리

강물에 담긴 산에서
시원스럽게 우는
참매미

구경하던
파아란 하늘도
하얀 구름도
강물 속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홍석하·시인, 1936-)


 

8월처럼 살고 싶다네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들
나는 초록의 숲을 응시한다네

세상은 온통 초록
이름도 없는 모든 것들이 한껏 푸른 수풀을 이루고
환희에 젖어 떨리는 가슴으로 8월의 정수리에
여름은 생명의 파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네
무성한 초록의 파고, 영산홍 줄지어 피었다

친구여
나의 운명이 거지발싸개 같아도
지금은 살고 싶다네
허무를 지향하는 시간도 8월엔
사심 없는 꿈으로 피어 행복하나니
저 하늘과 땡볕에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나의 명패는
8월의 초록에서 한없이 펄럭인다네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어
견고하게 닫아 건 가슴이 절로 풀리고
8월의 신록에 나는 값없이 누리는
순수와 더불어 잔잔한 위안을 얻나니
희망의 울창한 노래들은 거덜난 청춘에
어떤 고통이나 아픔의 사유도
새로운 수혈로 희망을 써 내리고 의미를 더하나니

친구여,
나는 오직 8월처럼 살고 싶다네
(고은영·시인, 1956-)


 

8월에는

 

봄날에
서늘하게 타던 농심農心이 이제
팔 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다
된더위 만나 허우적거리지만
기찻길 옆엔 선홍빛 옥수수
간이역에 넉넉히 핀 백일홍
모두가 꿈을 이루는 8월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또 한해의 지난날들
앳되게 보이던
저어새의 부리도 검어지는데
홀로 안간힘으로 세월이 멈추겠는가

목 백일홍 꽃이 지고
풀벌레 소리 맑아지면은 여름은 금세
빛 바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고 마는 것
우리가 허겁지겁 사는 동안
오곡백과는 저마다 숨은 자리에서
이슬과 볕, 바람으로 살을 붙이고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단지, 그 은공을 모르고
비를 나무라며 바람을 탓했던 우리
그리 먼 곳보다는
살아 있음에 고마울 뿐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슴 벅찬 일인데
어디로 가고
무엇이 되고 무슨 일보다,
8월에는 심장의 차분한 박동
감사하는 마음 하나로 살아야겠다
(최홍윤·시인)


 

8월의 소망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
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오광수·시인, 1953-)


 

8월

누구의 입김이 저리 뜨거울까

불면의 열대야를
아파트촌 암내난 고양이가
한 자락씩 끊어내며 울고

만삭의 몸을 푸는 달빛에
베란다 겹동백 무성한 잎새가
가지마다 꽃눈을 품는다
(목필균·시인)


 

8월

너만큼 기나긴 시간 뜨거운 존재 없느니.
뉜들 그 뜨거움 함부로 삭힐 수 있으리.
사랑은 뜨거워야 좋다는데
뜨거워서 오히려 미움받는 천더기.

너로 인해 사람들 몸부림치고 도망 다니고
하루빨리 사라지라 짜증이지.
그래도 야속타 않고 어머니처럼 묵묵히
삼라森羅 생물체들 품속에 다정히 끌어안고
익힐 건 제대로 익혀내고
삭힐 건 철저히 삭혀내는 전능의 손길.

언젠가는 홀연히 가고 없을 너를 느끼며
내 깊은 곳 깃든, 갖은 찌끼조차
네 속에서 흔적 없이 삭혀버리고 싶다.
때 되면 깊고 긴 어둠 속으로 스스로 사라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
(안재동·시인, 1958-)


 

8월

오동나무에 매달린
말매미 고성방가하며
대낮을 뜨겁게 달구고

방아깨비 풀숲에서
온종일 방아찧으며
곤충채집 나온 눈길 피하느라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푸르렀던 오동잎
엽록체의 반란으로
자분자분 색깔을 달리하고

무더위는 가을로 배턴 넘겨줄
예행연습에 한시름 놓지 못하고

태극기는 광복의 기쁨 영접하느라
더욱 펄럭이고 있는데
(반기룡·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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