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AND

한국어

All things

오늘:
786
어제:
703
전체:
733,916

문화 거짓말

2016.11.23 06:22

LeeKyoo 조회 수:3660

위에 있는 분이 맨날 거짓말만 합니다. 어떡할까요?

 
▶ 고민
위에 모시는 상사가 있습니다. 사실 능력도, 인품도 그저 그런 편입니다만, 그런 것은 대충 넘어갈 수 있습니다. 유능하면서도 인간적인 윗사람을 만나는 것도 복이니까, 제가 박복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업무가 잘 안되면, 뻔한 거짓말로 저에게 책임을 떠넘겨 버립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상사에게 대놓고 반발할 수도 없으니 속병만 깊어집니다.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2. 특히 자기기만에 기반한 거짓말은, 본인도 잘 인지하지 못한다. 
3. 하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결국 스스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4. 진실의 보상은 느리지만 영원하고, 거짓말의 보상은 빠르지만 이내 사라진다.

 
▶ 답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조물주는 ‘좋음과 좋지 않음을 알려주는 지식의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의 열매, 즉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그는 뱀의 꾀임에 빠진, 아내 이브와 같이 열매를 먹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립니다. 왜 열매를 먹었냐는 신에게, 이브가 주어서 먹었다며 거짓말로 변명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거짓말입니다.  

● 거짓말을 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

이브가 최초의 거짓말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계율을, ‘선악과를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왜곡하여 뱀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대교 신화에 의하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뱀은 사실 뱀이 아니라 릴리트(Lilith)라는 여성입니다. 아담의 첫번째 아내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말한, 릴리트가 최초의 거짓말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최초의 거짓말쟁이 자리를 놓고, 경쟁이 자못 치열합니다.

사실 거짓말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고릴라가 거짓말을 했다는 극히 드문 사례보고가 있고, 까마귀나 늑대가 기만적인 방법으로 먹이를 구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일반화하기도 어렵고, 솔직히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석연치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4살 반이 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꾸며서 인용하기 시작합니다. 6살이 되면, ‘거짓’으로 울거나 웃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거짓말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상대방과 자신의 기존 정보 수준을 가늠하고, 거짓말의 이득과 손해를 계산한 후에, 상대방이 믿을 만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고도의 메타표상 능력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아무 훈련없이 스스로 습득해냅니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에서는, 인지적 기만능력이 생존에 대단히 유리한 형질이었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 거짓말의 최고봉, 자기 기만

거짓말이 진화하면서, 다른 사람의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도 같이 진화하였습니다. 거짓말 능력과 탐지 능력은 점점 세련되어집니다. 일본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숙제를 왜 가져오지 않았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한 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학생은 숙제를 했지만,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가져오지 않은 것뿐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학생’으로 생각할까 걱정되어, ‘숙제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진실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꼴입니다.

거짓말을 잘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도 속는 거짓말, 즉 자기 기만(self-deception)을 하는 것입니다. 진화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이러한 자기 기만의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남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도 진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기만이라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 즉 건강한 전략은 아닙니다. 이러한 자기 기만의 인지 모듈이 진화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과연 이를 지시하는 유전자가 있는지 혹은 전적으로 학습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기만의 전략은 주로 경계성 인격장애나 자기애성 인격장애 등 일부 병적 성격과 관련이 많습니다. 도대체 ‘병적인’ 전략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빈도의존성 선택이나 대안적 번식전략 등으로 설명하지만 너무 어려우니까 넘어가겠습니다. 
 

● 자기 기만의 패러독스

자기 기만은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된 사실을 진실로 기만하려면, 먼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진실로 생각했다면, 그건 그냥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기만은, 동시에 두 가지 상태-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철학자 알프레드 밀(Alfred R. Mele)은 이것을 자기 기만의 역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모순적 상태가 가능할까요?

이에 대해 아주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좀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일부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하죠. 하지만 여러 목소리 중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피부의 전기 전도율이 조금 다르게 변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정말 자기 목소리가 아니거나, 혹은 완벽하게 착각하면 전도율이 변하지 않습니다. 연구자는 일부러 아주 어려운 과제를 주어,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자, 전기전도율 변화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응답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분 상태에 따라 자기 기만이 일어난 것입니다.

즉 자기 기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일부 인격장애 환자에게 나타나는 심각한 수준의 자기 기만도, 역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하게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 기만이 주는 적응적인 이득이 사라져 버립니다.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내적으로 그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자기 기만의 수준은 대상에 대한 욕망이 강하거나 혹은 불안이 심할 때, 특히 증가한다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갈 수 없습니다.
 

● 거짓말의 패턴

직장 상사의 거짓말을 말없이 들어주는 일은 참 고역입니다. 게다가 그 거짓말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험담이라고 하면,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반발하면, ‘저렇게 제멋대로인 것을 보니, 역시 상사의 지적이 일리가 있군’이라는 식의 주변 반응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힘없는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상사는 화려한 거짓말을 사용하는데, 부하는 그저 원칙대로 응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윗사람의 거짓말은, 권력이 없는 아랫사람의 거짓말보다 더 해롭습니다.

1988년 일본에서는 이른바 리크루트 사건(リクルート事件)이라는 정치스캔들이 일어났습니다. 아사히 신문이 리쿠르트 사의 뇌물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특종보도한 후, 결국 10달 만에 다케시다 수상 및 수십명의 정치인이 물러난 사건입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한 문헌에 의하면, 권력자, 즉 정치인의 거짓말은 다음의 네 단계를 거쳤다고 합니다.

첫째 의심을 받으면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몹시 화를 내며 부정한다.

둘째 들통이 나면, ‘비서나 담당자에게 물어 보겠다’고 하고, ‘물어보니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받은 적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셋째 문제가 더욱 불거지면, ‘비서나 담당자가 받은 것을 감추고 있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라고 한다.

넷째 도저히 어쩔 수 없으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나, 결과적으로 국가적 물의를 일으켰으니 자숙하고 책임지겠다’고 한다.

사실 정신의학적으로 병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무분별한 자기기만 전략은 아주 취약한 상황(무리한 이익을 꾀하거나, 큰 위기에 봉착한 경우)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기만 전략은 진화적 안정전략이 아닌데, 이는 자기 기만도 마찬가지 입니다. 따라서 노골적으로 자기 기만적 거짓말을 하는 상사가 있다면, 그 상사분이 직장 내 에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전략은 이내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 상사를 다루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에필로그

금새 드러날 정치인의 거짓말이 넘쳐납니다. 반대로 유언비어도 난무합니다. 근거가 부족할수록,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자기 기만의 시대입니다. 서기 395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설사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육신의 생명보다 영혼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선을 얻기 위한 거짓말도 안된다. 정신적인 선은 오로지 진리 가운데 있는 것이지, 거짓말쟁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거짓말에 관하여>
 

※ 참고문헌
Gur, Ruben C., and Harold A. Sackeim (1979) Self-Deception: A Concept in Search of a Phenomen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2): 147–169. 
Leeming, David A (2015) Encyclopedia of Psychology and Religion. Springer
Wright, Robert (2010) The Moral Animal: Why We Are, the Way We Are: The New Science of Evolutionary Psychology. Vintage.
쇼조 시부야 (2005) 거짓말 심리학. 서울: 휘닉스.
Bettetini, Maria (2006) 거짓말에 관한 작은 역사. 서울: 가람기획.
 
※편집자주: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뉴스를 보면 도처에 안좋은 소식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중장년 층은 노후 걱정에 노심초사합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날씨까지 우리 편은 없어 보입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한번쯤 고민할 법한 주제를 선정, 지면을 통해 상담을 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