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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임

2016.12.14 06:36

LeeKyoo 조회 수:3371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책임지라고 합니다.

▶ 고민
회사에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지시대로 계약을 진행했는데, 알고보니 불법이었다고 합니다. 회사는 제 잘못이라며, 책임지라고 합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물론 계약서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제 권한도 업무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단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우리는 어떤 행동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 
2. 선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행동은, 바로 “선택하지 않는 것” 이다. 
3. 흔히 자유는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유는 인간의 의무이다. 
4.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지는 태도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

▶ 답변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다”고 혼이 나고, 어떤 때는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혼이 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저 오늘 하루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

사회 생활을 해본 분은 잘 알겠습니다만, 현대인의 삶은 매일매일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을 찾는 것이 조직 사회의 생리입니다. 보통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책임을 지죠. 그래서인지 많은 현대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위에서 혹은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편을 택합니다. 누가 왜 그랬냐고 탓하면, “지시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할 준비라도 하고 있는 듯이 말이죠.

실제로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불안이 심한 경우도 있고, 판단력이 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 지는 알지만, 우울감으로 인해 자신있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드물게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분도 있습니다. 분명 적극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결정 곤란 성향이 단지 정신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이라고, 쉽게 ‘결정’내릴 수는 없습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는 현대 사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사회적 분위기,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강요된 결정(시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위 ‘결정 장애’라는 것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 인간은 선택하도록 ‘선택’받았다.

종종 결정 장애는 ‘햄릿 증후군’으로도 불리는데, 아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우유부단함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래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은 정신장애를 핑계로 자신의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결정 장애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햄릿 증후군이라는 말도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소위 ‘결정 장애 자가 진단 테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자가 진단법에 의하면, “남이 골라준 메뉴를 그냥 따른다”, “혼자서는 쇼핑을 못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로 ‘글쎄’, ‘아마도’ 등이다” 등 총 7가지 문항에서 3개 이상이면 결정 장애 초기 단계, 6개 이상이면 중증 결정 장애라고 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대단히 의심스러운 진단법입니다.

장 폴 샤르트르(Jean-Paul Sartre)는 ‘존재와 무(Being and Nothingness)’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는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We are condemned to be free)”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인간은 선택의 자유가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그 자유를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실존주의 분석가들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하곤 합니다. 선택과 결정의 과정은 늘 불안을 동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선택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누구에게 위임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결정 장애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근거가 의심스러운 ‘결정 장애 진단법’에 의존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이 결정을 잘 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지 여부에 대한 결정조차도 스스로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할 ‘의무’

1960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검거합니다. 그는 나치 친위대, 즉 SS(Schutzstaffel)의 중령이었으며, 유대인 문제를 담당한 실무책임자였습니다. 당시 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뉴요커> 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아이히만의 공판을 참관하게 됩니다. 한나 아렌트 본인도 나치의 박해를 받다가, 미국 외교관의 도움으로 겨우 망명에 성공한 유태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서 ‘악의 화신’이라며 맹비난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는 원래 악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극단적 생각에 빠진 광신도거나 혹은 사람을 죽이며 쾌감을 느끼는 성격이상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책 <악의 평범성>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판단이 없는,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순응과 복종이 악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아이히만의 행적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사실 아렌트의 말처럼 그렇게 “평범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로 짐작해보면, 그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재판 과정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이라면 있겠습니다만.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늘 가벼웠습니다. 물고기를 잡듯, 유태인을 잡아 목적지로 보내는 일은 단지 제 업무였을 뿐입니다.” – <아이히만이 남긴 말 중에서 발췌, 수정 및 편집> 
 

●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지는 자세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아주 유명한 실험을 합니다. 그는 실험 참가자를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고, 학생이 문제를 틀리면 교사가 전기 충격을 주어 징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기 충격은 15볼트씩 올려서 최대 450볼트까지 가할 수 있었습니다.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옆에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징벌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무려 65%의 참가자가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주었는데, 그들이 이러한 비윤리적 결정의 보상으로 받은 참가비는 고작 4달러였습니다(물론 전기 충격은 가짜였습니다).

선택과 결정은 늘 불안을 유발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들은 종종 법, 권위, 규정, 관행 혹은 주변의 태도에 좌우되어 자신의 결정을 유보하고, 시키는 대로 하곤 합니다. 법이나 규정이 정하는 대로, 혹은 윗 책임자가 명령한 일이니 “나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편리하게 넘어가려고 하죠. 하지만 절대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가 바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은 것(thoughtlessness)”라고 하였습니다. 법이나 규정, 매뉴얼을 따르면 된다는 상식, 혹은 윗사람의 지시나 주변에 의견에 따르면 된다는 상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은 상식일 뿐, 그러한 상식에 따른 결정이 옳다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즉 사유불능성이야말로 “악”의 근원입니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큰 죄를 저지르는 이유, 즉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자신에게 책임을 묻느냐고 억울해 합니다. 그러나 삶의 순간순간, 스스로의 생각으로 선택과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이야말로 잘못된 일입니다. 대신 선택을 해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청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 행동도, 결국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 에필로그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좋은 뜻을 가지고 명령대로 했을 뿐이니,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이죠.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쪽 해안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것처럼, 서쪽 해안에는 책임의 여신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Arendt, Hannah (1971),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Viking Press.
Sartre, Jean-Paul (2012), Being and Nothingness. Open Road Media. 
Iacovou, Susan, and Karen Weixel-Dixon (2015), Existential Therapy: 100 Key Points and Techniques. Routledge.
Milgram, Stanley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4).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371.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