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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점(占)

2014.02.02 08:53

이규 조회 수:480

설날 가족 모임에서 김호철(가명·56)씨는 놀랐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 가운데 점(占)을 본 사람들이 꽤 많아서였다. 젊을 때 점 따위엔 관심도 두지 않았던 그는 세태 변화를 실감했다. 그만큼 세상이 불안하다는 것. 불안 심리는 단 몇 초 앞이라도 미리 알고 싶은 본능을 자극한다.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간은 ‘호모아우구란스(homo augurans)’, 곧 ‘점치는 인간’이다. 현대과학은 점을 부인하지만, 인류사에서 점은 늘 인간과 함께 해왔다. 한국인에게 점은 빼놓을 수 없는 문화코드다. 최치원의 풍류도를 의미하는 ‘현묘지도(玄妙之道)’도 합리보다 직관에 가깝다. 영화 ‘관상’에 이어 조만간 ‘만신’(무당의 높임말)도 개봉한다니 질긴 생명력과 시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인간문화재이자 무속인인 김금화씨. 83세인 데도 정정하고 말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무속인 생활 70년. 그에 따르면 무속인은 카운슬러이며 몸과 마음을 정하게 하는 것이 점을 봐주는 이의 도리라고 한다. 점을 보는 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조용철 기자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의 점집들. 젊은 사람들은 ‘재미’로 본다지만 사실은 운명과 관련된 무거운 주제를 묻는다.
점은 세상 만사에 끼어든다.

2010년 동방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경영학과 김만태 교수는 천안함 피격 직후 주역 점을 쳤다. 나라 전체가 침몰한 46명 장병의 생사에 애를 태울 때였다. 중수감(重水坎)괘가 나왔다. 물 구덩이가 연거푸 두 개라는 뜻. 과연 천안함은 두 동강으로 발견됐다.

2003년 국내 모 철강회사 임원이 역학자 김성욱(『예언』의 저자)씨를 급히 찾았다. 중요 장비 이상으로 하루 1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기술자가 보고, 검찰이 수사해도 오리무중. 김씨는 주역 괘를 뽑았다. 뇌수해(雷水解). ‘공이 새매를 높은 담 위에서 쏘아 잡으니 불리한 일이 없다’는 것. ‘높은 담장 위’를 CCTV로 해석하고 그것으로 매(내부자)를 살펴보라고 했다. 회사는 의심되는 장비를 집중 감시해 10여 일 만에 범인을 잡았다. 과연 내부자 소행이었다. 김 교수와 김성욱씨는 정해진 운명을 본 것인가.

만신 김금화(83)씨. 14세에 ‘신’이 내린 뒤, 70년간 무속인으로 살아왔다. 인간문화재인 그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10여 년 전, 김씨는 꿈에서 천 길 낭떠러지에 섰다. 떨어지면 죽는데… 에라 모르겠다. 냅다 뛰어오르니 파란 풀이 깔린 평지. 손을 흔들며 뛰어다녔다. 다음 날 아침 한 아이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병명도 모르는 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아들(당시 8살)을 살려달라고 했다. 부인은 가톨릭 신자. 그때부터 김씨는 애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투약과 수술 문제로 병원과 씨름을 벌였다. 요는 병원 치료를 거부하라는 것. 10여 일 싸움에서 김씨는 승리했다. 아이는 지금 건강하단다.

이런 일들은 합리적 사고 체계에 난감함을 안긴다. 도대체 점이 뭐라고 국가·대기업·개인에게 두루 존재를 드러내는가. 사주·궁합 같은 문제로 확대하면 점에 걸려들지 않는 인간사는 없다.

그러나 찬찬히 따지면 사례들엔 의문이 가득하다. 주역 괘를 왜 꼭 그렇게 해석했을까. 달리 해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까. 김금화씨는 왜 완쾌를 확신했고 꿈의 어떤 부분이 치료 거부와 관계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 엄마나 의사가 말을 안 들었다면 어찌 됐을까. 그런 것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운명을 만신은 봤다는 건가. 점을 믿느냐 마느냐는 물음은 인류문명사만큼 오래된 질문이다. 『삼국사기』를 보라.

#사례 1=(신라) 제21대 비처왕(또는 소지왕)이 488년 천천정(天泉亭)으로 갔다…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아니면 한 사람이 죽는다’는 글을 겉봉에 쓴 편지를 줬다.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보통 사람, 한 사람은 왕”이라고 해석했다. 왕이 여니 ‘거문고 갑을 쏘라’고 돼 있었다. 왕이 궁중에 들어와 거문고 갑을 쏘니 왕비와 중이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죽임을 당했다.

#사례 2=(신라와 당) 군사가 강나루 어구에 닿았다, 갑자기 새가 소정방 위를 날았다. 점을 치자 나쁜 징조였다. 김유신이 말했다. “어찌 나는 새 한 마리의 괴이한 짓으로 하늘의 때를 어길 수 있겠소.” 그러곤 신검으로 겨누니 새가 찢겨 떨어졌다. 소정방이 나가 싸우니 백제 군사가 크게 패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 자매 모이라이(Moerae) 여신이 모에라(할당)를 갖고 태어난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한국 속담도 ‘팔자 도망은 독 안에 들었어도 못 한다’고 한다. 운명론이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 곽박(郭璞·276~324)은 풍수지리서 『금낭경(錦囊經)』에서 “신이 할 바를 빼앗아 천명을 바꾼다”고 했다. 점을 놓고 운명론과 의지론은 늘 충돌한다.

전통사회에서 점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찾는 수단이었다. 고려 때까지 점은 그 지위가 탄탄했다. 조선은 달랐다. 합리(合理)를 중시하는 성리학의 나라답게 점을 경계했다. 양반·사대부는 점을 짐짓 멀리했다. 근·현대에도 점은 타파해야 할 미신이며 척결 대상이었다. 김금화씨도 “70년대에 미신을 퍼트린다고 청량리경찰서에 잡혀갔다”고 회상했다. 지배 논리가 ‘합리’인 시대에 점을 멀리하는 것이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였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일 뿐 속사정은 달랐다. 조선에서 왕실은 관상감을 두고 점을 쳤다. 사대부는 육효와 사주 명리학으로, 백성은 토정비결로 점을 봤다. 세조는 1458년 ‘녹명서(사주풀이)는 유학자가 궁리하는 하나의 일’이라며 서거정(1420~1488)에게 사주풀이 책을 쓰라고 하명까지 했다. 그래서 한국의 첫 명리서(命理書) 『오행총괄』이 나왔지만 저자는 ‘사주는 못 믿을 것’이라고 썼다. 식민지배의 합리화를 위해 쓴 책이지만 무라야마 지쥰은 『조선의 점복과 예언』에서 근대 조선에서도 점은 맹위를 떨쳤다고 전했다.

서울 미아리 고개 옆 점집들. 미신으로 배격됐던 점이 요즘 슬금슬금 확장되기 시작한다.


주선희 교수
현대도 마찬가지다. 김만태 교수는 2010년 ‘정초 점복풍속에 관한 연구’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경북 칠곡 왜관읍 마을엔 정초 토정비결을 봐주는 이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80년대 서울 거리엔 토정비결 노점이 있었고, 남산·미아리엔 점집이 늘어섰다. 관상 전문가인 원광디지털대학 얼굴경영학과 주선희 교수는 “20년 전 김영삼 정부의 경제장관 K씨도 매일 주역 점을 쳤다”고 했다.

이런 ‘이중성’은 진행 중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연구센터(센터장 김지윤 연구위원)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인터뷰를 한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칼라’의 점치는 비율이 뜻밖에 높았다. 전체 평균 38.3%인데 블루칼라는 30.2%, 화이트칼라는 42.5%였다. 지식인이 점을 더 보는 것이다.

더 흥미 있는 내용은 ‘점 경험자가 38.3%’라는 대목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조사한 91년 19.6%, 95년 16.5%, 96년 18%에 비하면 평균 두 배 넘게 뛰었다. 19세 이상 인구 4000만 명을 기준으로 1500만 명 이상이 점을 봤다. 97년 인구 기준 600여 만 명보다 1000만 명 가까이 늘었다. 일각에선 “한국의 점술 시장이 97년 종사자 40만 명, 매출액 1조4000억원이었는데 2007년 55만 명, 4조원대로 성장했다”고 추정한다. 왜 폭발하듯 늘었을까. 관련 연구는 없지만 ^97년 금융위기 뒤 불안이 가중되고 ^인터넷의 점 사이트가 늘어 접근이 쉬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확성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통계청의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관련 통계’도 2008년까지 점술 업계가 활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점술인이 2006년 1만5690명에서 1만5628명(2007), 1만5777명(2008)으로 느는 추세였다. 업체는 각각 1만4631개-1만4625개-1만4715개였지만 매출은 2503억원-2733억원-2789억원으로 줄곧 늘었다. 김금화씨는 “무당 희망자가 3~4년 전까지 많이 늘어 여기저기 깃발이 펄럭였다”고 했다. 18년간 종로에서 영업한 한 무속인도 “5년 전에 장사가 가장 잘됐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불경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점술인이 2009년부터 1만5711명(2009년)-1만5153명(2011년)-1만4384명(2012년)으로 줄었다. 2012년 매출도 정점이었던 2008년보다 150억원 줄었다. 무속인 회원 30만 명이라는 ‘대한경신연합회’ 최수진(56) 회장은 “전통 무속점은 역대 최악의 불황이다. 형편이 어려운 무속인들이 파출부나 음식점 종업원으로 나간다”고 했다. 상층부는 나름 버텨도 대부분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무속계의 양극화’다.

점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린 듯하다. 점에 대한 개방성 때문이다. 아산연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점치는 20대 젊은이 비율(29.6%)이 30대 이상보다는 적지만 97년 전체 평균보다 10%포인트쯤 많다. 김만태 교수는 “20~30대는 점에 대해 솔직하다”고 말했다. 주선희 교수도 “관상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고 이를 공부하는 20대도 늘었다”고 말했다. 김금화씨도 “전보다 적지만 그래도 젊은이는 는다”고 했다.

취재팀은 서울 종각과 종로3가, 압구정 일대의 사주 카페와 노점 사주팔자를 들러봤다. 20대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재미’로 봤다고 했지만 실제론 대학·애인 같은 나름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20대 남성 K씨도 심심하면 인터넷 점을 보고 꿈 해몽도 한다. 점에 친숙한 젊은 세대는 일시적 조정기가 끝나면 점의 새 풍속도를 그릴 가능성이 높다.

시대의 변화상은 점괘 해석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김만태 교수는 토정비결의 첫 괘인 111괘를 사례로 변화 양상을 살폈다. 1918년부터 63년까지 괘사는 줄곧 하나였다. 그러다 64년 돌연 14개로 늘며 월(月)별로 두 줄 설명이 나타났다. 2003년엔 더 늘어 월별 괘사가 세 줄이 됐다. 왜 늘었을까. 김 교수는 “64년은 산업화가 시작되며 사회경제적 욕구가 커지는 시기”라며 “이에 따라 단순했던 괘사가 복잡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관상도 변화 폭이 크다. 주 교수는 “의미나 해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엔 여성의 광대뼈가 크면 팔자가 드센 과부상, 남편 잡아먹게 생긴 여자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대기업 사모님 상이다. ‘물기가 촉촉한 눈’도 전엔 도화기로 봤지만 요즘은 감성적 눈으로 좋게 해석한다.

역학자 김성욱

그런데 점을 이런 식으로 미화하면 되겠는가. 실제론 많은 문제가 있다. 점 전문가들은 “운명론에 빠지게 하며 중독을 일으킨다”(김만태 교수), “점에는 도덕적 제어가 없다. 도둑질을 위해 칠 수도 있다”(역학자 김성욱), “봐주진 않지만 못쓰겠다 싶은 사람도 점치러 온다”(김금화씨)고 한다.

통계가 없어 그렇지 잘못된 점도 허다할 것이다. 사주가 같은 쌍둥이의 다른 삶은 어떻게 설명할까. 방송엔 점의 폐해가 자주 나온다. 서거정도 “육십갑자로 보면 사주가 51만8400개인데 백성은 억조에 달한다”고 비웃는다. 김금화씨도 “나도 틀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욱씨는 “『백서(帛書)주역』 요편(要篇)에서 공자는 100번 점을 쳐 70번이 맞았다”고 했다. 그만큼 맞으니까 점을 치라는 게 아니다. 공자의 확률이 70%였으면 다른 이들은 형편없다는 얘기다.

점치는 자의 문제도 있다. 김금화씨는 “혹세무민하고 사기 치는 사람이 있다”며 “점은 카운슬링이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점을 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적중률이 높다’는 김성욱씨도 주역 점을 위해 일주일간 삼가고 몸을 정갈히 한다.

어쨌건 점시장이 확장되는 세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과학문명의 시대지만 점은 한국 전통 DNA의 일부이자 오늘날 사회·문화 현상이기도 하다. 다시 요편으로 돌아가 보자. 제자들이 공자를 비난했다. “주역 점이나 무당이나 점쟁이의 점이나 마찬가지다.” 공자가 답했다. “후대에 나를 의심한다면 주역 점 때문일 것이다. 가는 길이 무당, 점쟁이와 비슷해서다. 그러나 귀결점은 다르다. 나는 주역을 통해 ‘덕(德)’과 ‘의(義)를 살필 뿐이다.” 오늘날 점에 ‘덕’과 ‘의’가 있는가. 점을 보건 안 보건 음미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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