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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줄거리
  프랑스의 북부 토스트란 시골에서 사는 샤를 보바리는 병원 개업을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혼인을 서둘렀다. 샤를은 사랑하는 여성이 없었으므로
마흔 다섯 살이나 된데다 얼굴도 밉기까지 했지만 상당한 지참금 때문에 구혼
경쟁이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샤를은 결혼을 하게 되면 행복한 생활을 기대했다. 좀더 자유롭고 윤택하게
지내게 되기를... 그러나 그의 첫째 부인인 엘로이즈 뒤뷔크 부인은 주장이
심하고 사사건건 샤를의 생활을 간섭했다. 그의 부인은 몹시 질투가 심했다.
샤를에게 오는 편지를 먼저 뜯어 보고 그의 뒤를 살피고 여자 환자가 있을 때면
문 뒤에서 진찰실을 엿듣곤 했다. 그런데다 무척 신경질적이어서 샤를은 아내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밤중에 베르토라는 시골 농가의 골절 환자가 왕진을 청해 왔다.
토스트에서 베르토까지는 육십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환자인 루올 씨는 이
고을의 꽤 부유한 지주였다. 홀로 된 루올 씨에게는 엠마라는 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치료를 시작한 지 사십여 일 후에는 거의 완치가
되다시피해서 환자 자신은 물론이요. 이웃 사람들끼리 샤를을 훌륭한 의사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샤를은 사람들의 호평을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이 집 처녀에
대한 면목이 서는 점에서는 다행으로 여겼다.
  치료 기간 중에 그는 매주 한 번씩 규칙적으로 환자를 찾아보았으며 그 외에도
마치 우연히 들른 듯이 자주 그 집을 들락거렸다. 그것은 물론 엠마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어느덧 이 베르토로 말을 모는 일이 다시 없는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엠마는 유르를린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와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 여러
가지 교양을 쌓은 꿈이 많은 엠마는 생기가 넘치고 투명하리 만큼 살결이 뽀얀
아가씨였다. 반가이 맞아 주고 상냥한 말씨로 환송해 주는 엠마에게서 샤를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샤를은 루올 노인이 완치된 후에도 이 집에 자주 들렀다. 그러나 샤를은
부인의 심한 잔소리가 귀찮아서 엠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그럴수록 만정은 가슴 속에서 불타올랐다.
  샤를의 부모는 가끔 아들과 며느리를 보러 왔다. 그러나 번번히 며느리와
싸우고 돌아갔다. 재산이 많다고 하여 구혼 경쟁들을 했지만 실은 엘로이즈의
재산이란 것도 소문과는 달랐다.
  결혼 전에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난 일로이즈는 점점 더 밉게만 보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또 시부모와 충돌이 생긴 지 얼마 후에 엘로이즈는 별안간
각혈을 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샤를이 상처를 한데 대한
동정에서인지 환자의 수가 늘어갔다. 샤를은 베르토에도 마음대로 다니기
시작했다. 막연하면서도 새로운 행복을 꿈꾸면서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빛이
떠올랐다. 더욱더 젊어지는 것만 같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희망을
다짐하면서...
  엠마는 실상 샤를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어쨌든 이 남자가 자기를
찾아 주는 유인한 이성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랑이라든가 정열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려올 때 엠마는 무언지 모를 감미로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샤를은 대단히 결심을 하고서 베르토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엠마를
대하자 또 청혼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엠마가 없는 틈을 타서 루올
씨에게 말을 꺼냈다.
  "루올 씨 저..."
  과거를 가진 남자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루올 노인은 곧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챘다.
  "알았소 나로선 이 이상 바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애의 생각을 물어
보기로 하지요"
  엠마는 얼떨떨했다. 그야말로 무언지도 몰랐다. 결국 구혼은 수락되었다. 다만
샤를의 상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아주 성대했다. 그 지방 풍속에
따라 갖출 것을 다 갖추었고 별다른 불만이 없이 신혼 여행도 했다. 그리고
토스트에 정착했다.
  엠마는 샤를의 후처로서 보바리 부인이 된 것이다
  시골 병원의 생활은 한결같이 단조롭기만 했다. 엠마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에 뒤이어 이내 환멸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두 사람의 생활이
친밀해질수록 구 내면은 점점 남편에게서 멀어져 갔다.
  샤를이 하는 얘기는 결혼 전처럼 감격을 주지도 않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화제들 뿐이었다. 그는 헤엄을 칠 줄도 물랐고 검술도 총술도 모르며 승마에도
연극에도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내라는 것은 무엇이나 다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나 다 뛰어나야 하며 여자를 불 속으로 끌어들일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엠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샤를은 이런 점을 구비하지 못한
남편이었다. 샤를은 엠마가 샤를에게 염증을 내는 줄도 모르고 그는 아내가
행복해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이 움직임이 없는 평온함
둔한 단조로움 그리고 자기가 사내에게 준 행복을 생각하면서 샤를을
원망하였다.
  엠마는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황혼이 깃든 창가에 기대 서서
한없는 꿈을 쫓으며 공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수녀원 시절이 새삼스럽게
그립기도 했다. 무능하고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일생을 따분한 시골
구석에서 보내야 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우울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후작댁에 초대되어 화려한 무도회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 밤은 보바리 부인에게 추억을 남겨 주었다.
  많은 신사 숙녀들 틈에 끼어도 엠마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용모의
아름다움에서나 화술에서나 몸매며 춤에 있어서도 의젓한 숙녀였다. 무엇보다도
엠마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 삶들은 지금쯤 호화 찬란한 파리에서
사교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텐데 자기는 이렇듯 보잘것없는 시골에서 세월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청춘도 아름다움도 이대로 시골 구석에서
한낱 풀잎처럼 시들고 말리라고 생각할 때 엠마는 한없이 초조해졌다. 무미
건조한 생활과 초라한 자기 모습에 점점 더 싫증이 났다.
  엠마는 토스트가 싫어서 환경을 바꿔 보려고 남편에게 졸라 반년 전에
용빌르라베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
  이 곳은 루앙 시에서 8마일 떨어져 있고 조그만 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며
왼편은 초원 오른편에는 밭이 쭉 뻗어 있었다. 풀밭 가장자리를 흐르는 물은
목장의 빛깔과 밭의 색깔을 하나의 흰 줄로 구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풍경은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정원과 정적에 익숙해 온 엠마는 좀더
인간적인 자극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어려서부터 시와 소설을 많이 읽고 음악과 그림을 좋아한 엠마에게 샤를과의
결혼 생활은 다만 우울한 마음을 길러 줄 따름이었다. 밤낮으로 환자나 대하고
의학 서적이나 뒤적거리는 무능하고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일생을 이
마을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울적해졌다.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마음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엠마 앞에 나타난
사내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레옹이었다.
  이 마을에서 엠마에게 자극을 주는 유일한 존재는 공증인의 서기로 있는
레옹 뿐이었다. 레옹은 그의 직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문학이나 음악에
이해가 있었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보바리 부인은 이 청년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레옹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이면서도 수줍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여자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이런 일을 자기가
먼저 얘기하리 만큼 경솔하지는 않았다. 한숨을 쉬면서 마음 속에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말만 하는 것이었다. 매력이 넘치는 레옹의 얼굴을 볼 때 부인은 항상
불안한 초조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레옹 역시 엠마의 재능과 미모에 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옹은 사랑의 비밀을 끝내 털어놓지 않고 파리로 유학의 길을
떠나버렸다.
  레옹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부인의 가슴은 마치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그이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내가 좀더 대담하게 모든 것을 고백하지 못했던가' 보바리 부인은
창문을 열고 서서 마차로 떠나간 레옹의 뒤를 쫓기나 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먹장 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강한 바람이 포플러 나무를 뒤흔들고
지나가더니 이어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빗발이 나뭇잎을 때리고 지나간
후 금방 해가 다시 났다. 모래 위의 물웅덩이에는 아카시아 꽃이 떠 있었다.
  '이제는 가고 없는 레옹!'
  부인은 물끄러미 아카시아 꽃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날 저녁 우연히 약제사 오메가 와서 레옹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런 촌에 있을 때와는 달리 레옹도 아마 금방 파리가 좋아질 것입니다.
술집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가장 무도회에서 샴페인과 파리 여인에게 정신을
잃고 말겠지요"
  이 말을 들으니 보바리 부인은 마치 손 안의 구슬을 놓친 듯 후회했다. 나는
하나의 행복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샤를의 평범하고 권태로운 얼굴을 보니 한결 더
우울해졌다
  결혼 전 일을 돌이켜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를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변덕으로 싫어지게 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이외에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결혼 당시는 엠마도 신부답게 가구를 여러 가지로 꾸며서 기분을 전환시켜
보기도 하고 커튼의 무늬를 궁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반 년쯤 지나서부터는
왜 이처럼 무능하고 둔하고 따분한 사내와 결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일 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어떠한 남편을 만나게 됐을까 하고 여러
가지 타입의 남자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 샤를의 품에서
빠져 나갈 결심도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불만을 참고 억제하는 것이 지나쳤든지 히스테리 증상이 생겼다.
샤를은 그래도 의사로서 꽤 성공한 편이었고 생활에 어떤 곤란도 받지 않을 만큼
무척 바빴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가 아무런 불만이 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한없이 외로웠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매력을 느낀 레옹도 멀리 파리로 가버리지 않았는가!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닳아빠진 구두처럼 점점 주름이 늘어갈 뿐이다. 부인은 이러한
허전함을 걷잡을 수 없었다.
  계집애를 낳았으나 어머니로서의 애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 곧 남에게 맡겨
버렸다. 결혼은 사랑의 형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엠마의 경우는 결혼이 무덤과도
같이 쓸쓸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빗이나 반지 목도리 따위를 어루만지기도
하며 하얗게 드러난 팔과 어깨에 사랑스러운 키스를 하곤 했으나 일단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 엠마에게는 그런 애무조차도 도리어 불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랑이라든가 정열 감동 등 소설 따위에서 즐겨 읽은 아름다운 말들이 현실에
있어서는 이다지도 비참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자기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슬픔을 가져오는 원인일까 생각하면서 보바리 부인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고요한 저녁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새삼스러웠다. 창에 비치는 어스름한 빛이
물결치듯 조용히 가라앉는 저녁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들은 자기의
생활 자체와도 같이 꼼짝도 않고 캄캄한 바다에 빠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때 시계는 째깍째깍 그저 반복일 뿐인 시간을 새기고 있다. 자기 마음은
헝클어졌는데 주위의 만물은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한가 하고 놀라운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 때 요즘 집에 돌아와 있는 두 살 난 딸 베르트가 아장아장 걸어와서
'마마' 하고 앞치마에 매달렸다. 보바리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매정스럽게
밀어냈다. 자기의 귀중한 공상을 무너뜨린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어린애는 더욱 어머니 무릎에 매달렸다.
  "귀찮다는 데도!"
  부인은 재차 팔꿈치로 아이를 떠밀었다. 저만치 옷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아이가 쓰러졌다. 자지러질 듯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부인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이 어린 것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보바리 부인은 베르트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가다간 내 생활이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의 탓인지 알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몸서리칠 만큼 단조로운 생활에도 더러는 뜻하지 않은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즉 이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공진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지사가 몸소 참석하고
표창 받을 농부들이 가족을 데리고 모여들었다.
  보바리 부인은 최근에 알게 된 로돌프라는 지주와 함께 이 모임에 참석했다.
  로돌프는 유세트 장의 주인으로 아직 독신이었다. 1년 수입이 일만오천
프랑이나 된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인데 그의 머슴이 진찰을 받으러 온 일이 있어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인과도 서로 알고 지내게 됐다.
  호색가인 로돌프는 보바리 부인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미 욕심이 생겼다.
마음 속 깊이 찌르고드는 그 여자의 눈매 하얀 살결과 표정이 풍부한 얼굴
첫눈에 반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로돌프는 오늘의 공진회가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 보바리 부인을 청해서 같이 온 것이다.
  엠마는 이 날 따라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엷은 색깔의 리본이 달린
보닛 밑으로 햇빛을 받아 새하얀 얼굴이 또렷하게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길다란
눈썹에 가리운 크고 푸른 눈동자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드러낸 살결은 구슬이
굴러 떨어질 듯 매끈했다.
  보바리 부인은 이 곳에 오는 도중 들국화를 꺾으면서 로돌프에게 말했다.
  "참 둘국화가 곱네요. 마을 처녀들은 이걸로 사랑을 점칠 수 있대요"
  균형이 잡힌 몸매에 장부답게 생긴 로둘프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여자를
상대해 온 만큼 보바리 부인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부인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 가를 곧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부인을 위해서 점을 쳐볼까요?"
  "아녀요. 그런데 로돌프 씨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시죠?"
  "글쎄요. 그러나 만일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면 정말 온 정열을
기울여서 사랑하고 싶은 것만은 사실이죠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사막을 걷는
거나 마찬가질 겝니다"
  한 자리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 틈에 끼었을 때 로돌프의 차림새는 한결 더
멋이 있었다. 그는 지금 서른 네 살의 한창 나이에 굵직한 줄무늬의 바지를 입어
더욱 젊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구두에는 풀잎이 비치리 만큼 반들반들하게
니스 칠이 되어 있었다. 조끼는 회색 무늬가 들어 있고 저고리 소매에는 주름
장식이 잡혀 있어 농부들 틈에 끼어 있는 그의 모습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참사관이 일어서서 군중에게 극히 형식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로돌프는
부인 곁에 다가가서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판에 박은 듯하고 생명이 없는 저따위 맥빠진 말은 진저리가 나잖아요?
진실하고 위대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과 정열만이 인생의 보람이요. 인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영웅적인 행위와 그 감격스러움 시와 음악과 예술 그러한 것의 바탕이 되는
사랑과 정열!"
  보바리 부인은 귀밑까지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얼마쯤은 세상의 이목과 도덕에 따라서 살아가야죠"
  "아닙니다. 부인 도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저 바보 같은 친구들이
떠들어대는 체면상의 도덕 또 하나는 사랑 속에 꽃 피는 영원한 도덕입니다.
이 세상에서 매력을 지닌 도덕은 참다운 용기를 지닌 특출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높은 의미의 도덕입니다"
  말쑥하게 가다듬은 로돌프의 머리에서 풍기는 포마드 냄새가 그의 야릇한
체취와 함께 보바리 부인을 자극하고 황홀한 유혹을 느끼게까지 했다.
  그 후 여섯 주일이 지난 어느 날 로돌프가 보바리 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서 사랑을 이루려면 여자에게 적당한 자극을 준 후에 얼마 동안
간격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저녁 무렵이어서 유리창에는 차츰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보바리 부인은
홀로 있었다.
  로돌프가 객실에 들어서자 보바리 부인의 안색은 본인이 느낄 만큼 달라졌다.
이러한 얼굴빛과 태도를 보고 로돌프는 자기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첫인사를 받고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일이 있었고 몸이 불편하고 해서 이렇게..."
  "몹시 편찮으셨어요?"
  그녀는 놀란 듯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몸살이 좀... 찾아 뵙기가 두려워서"
  "왜요?"
  "모르시겠습니까?"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차근히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로돌프는 말을 이어서
  "엠마"
  "어머나 그렇게 부르시다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그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찾아 뵙기가 두려웠던 것도 모두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가슴에 넘쳐
흘러 불쑥 한 마디 튀어나온 당신의 이름 그 이름을 왜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까?
보바리 부인... 이것이라면 누구든지 당신을 부르는 것이죠... 더욱이 그것은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 딴 사람의 성입니다. 딴 사람의..."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저는 오직 절망뿐입니다. 아니 실례했군요! 작별하겠습니다...안녕히...
저는 멀리 떠나가겠습니다. 당신이 두 번 다시 저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먼 곳으로...그런데도...오늘이란 이 날이 ...어떤 힘으로 하여금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줄달음치게 했을까요? 사람이 하늘과 싸울 수 없는 것처럼
천사의 미소에는 대항할 수 없는 것처럼 이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녀는 황홀해서 넋을 잃은
사람처럼 로돌프의 속삭임의 열기에 의해서 달아올랐다.
  "그러나 비록 오늘 방문을 안했어도 비록 만나뵙지 못했다 해도 저는 항상
당신 곁에서 당신을 감싸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저는 잠자리를
걷어 차고 이 곳까지 왔었죠. 당신의 집을 달빛에 비친 지붕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창가에서 흔들거리는 정원수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비치는 램프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당신은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곳에 그렇게 가까이
또 그렇게 멀리 불쌍한 사나이가 있었던 것을..."
  "오, 당신은 참으로 좋은 분 그런 생각까지 하실 줄은..."
  부인은 숨을 내쉬며 간신히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것뿐입니다. 의심은 안하시겠죠?
말씀해 주세요! 단 한 마디라도 사랑을 의심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로돌프는 의자에서 차츰차츰 밑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때 부엌 쪽에서 신발 소리가 나며 하녀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로돌프는 시치미를 떼고 일어났다.
  다음 날 말에 탄 보바리 부인과 로돌프의 모습이 마을 밖 숲에 나타났다.
  어젯밤 샤를이 부인의 몸이 약하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을 때 로돌프는
승마를 하는 것이 건강에 가장 적당하니 생각이 있으면 집에 있는 말을 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남편 샤를은 좋아하면서 아내를 대신하여 감사해 하고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이처럼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꽃이 만발한 들을 지나니 빽빽이 우거진 울창한
나무 숲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렸다. 로돌프는 말을
잡아맸다.
  그녀는 오솔길 사이의 이끼 낀 곳을 걸어갔다. 스커트 자락을 치켜 잡기는
했으나 너무 긴 탓으로 걷기가 불편했다. 로돌프는 그 뒤를 따라가며 양말 신은
그녀의 흰 다리의 윤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어디를 가는 거에요? 이젠 그만 가요. 지쳤어요"
  돌아다보며 물었다. 로돌프는 아무 대답도 없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 곳에는 노목을 잘라 눕힌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은 자빠져 있는 나무 기둥에
걸터 앉았다. 로돌프는 자기의 사랑을 그녀가 놀라지 않게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흩어진 톱밥들을 발 끝으로 걷어차며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운명은 이제 하나로 되지 않았습니까?"
  로돌프는 단정적으로 물었다
  "아녜요. 잘 아시면서 그건 안 될 말씀이에요"
  그녀는 일어서서 돌아가려 했다. 로돌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잠시 황홀한 눈매로 사나이를 바라보던 부인은 갑자기
  "아아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말은 어디 있어요? 돌아가요"
  로돌프는 화난 듯이 당황한 몸짓을 하였다. 그리고 이상한 미소를 띄우며
양팔을 활짝 벌리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더듬거렸다.
  "어머 무서워요. 그러지 마세요. 자 이제 돌아가요"
  "하는 수 없죠"
  그는 야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평상시와 같은 은근하고 부드럽고 서먹서먹한 태도를 취했다. 그녀는
그제야 안심하고 그에게 팔을 걸치며 돌아가려 했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저의 사랑을 믿지 않으십니까? 제발 제 말을"
  그는 팔을 벌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두 사람의 말은 나뭇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연못가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연못 수면에는 풀들이
파랗게 떠 있었다. 시들은 수련이 동심초 사이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풀을
밟는 두 사람의 발소리에 개구리가 뛰어서 숨어버렸다.
  "제가 나빴어요.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다니 아무래도 제가 좀 돈 것이 아닌지
몰라요"
  "왜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아 로돌프 씨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그녀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말하였다. 스커트 자락이 로돌프의 옷에
감겼다. 그녀는 풀밭에 반드시 누워 하얀 턱을 뒤로 젖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신없이 흐느끼면서 오들오들 몸을 떨고 있었다.
  초저녁 어둠이 사방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심장이 또다시 뛰고 뜨거운 피가 온
몸을 감도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그들은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말을 탄 그녀의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날씬한 상반신을 똑바로 하고 한쪽 다리는 갈기 위에 얹었다. 저녁 노을에 비친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해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한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현기증이 이는 것 같은 정오의 기억이 아직도 온 몸에 감도는 것을 느끼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머리맡에 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놀랐다.
  '어마, 내 눈이 어쩜 이렇게 클까? 그리고 이렇게 깊을까? 정말 나도 파리의
어디에 갔다 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거야'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의 얼굴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아아, 나에게도 애인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 말야'
  그 말을 되풀이하며 처녀 시절부터 꿈꾸던 일이 지금에야 실현된 것처럼
생각했다. 오랜 시일을 억눌려 막혀 오던 사랑의 둑이 기쁨에 넘쳐 한꺼번에
홍수를 이룬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흥분 속에서 후회도 두려움도 그리고 고민도
느끼지 않는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 다음 날도 승마를 핑계로 그녀는 새로운 기쁨의 밀회를 했다. 뜨겁고 긴
포옹이 끝나자 그들은 맹세를 했다. 영원히 변치 말 것을.
  "로돌프, 당신은 나의 슬픔을 모르실 거에요. 숨이 막힐 것 같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한 마리의..."
  "엠마, 아무 말도 말아요. 아무 말도"
  그녀의 이야기를 막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엠마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로돌프,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상한다고 해 주세요"
  "엠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엠마!"
  밀회는 행복의 불꽃처럼 즐거웠다.
  그 날부터 두 사람은 매일 저녁 편지를 교환하기로 했다. 그녀는 뜰
가장자리의 개울 옆 울타리 사이에 편지를 끼워 두고 로돌프는 그것을 가져
가면서 편지를 두고 간다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남편 샤를이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가자 그녀는 갑자기 로돌프가
만나고 싶어져 유세트 장으로 달려갔다.
  풀밭과 농장의 뜰을 지나면 로돌프의 집 현관이 있고 그 곳에서 큰 계단이
이층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커다란 침대에 로돌프가
잠들어 있었다.
  "로돌프, 제가 왔어요"
  난데없이 로돌프를 부르는 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아, 엠마, 어떻게 왔소? 잘 왔소"
  하고 그는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그의 목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남자는 새벽에 피어난 한 떨기 꽃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이처럼 대담한 행동에 성공하자 그녀는 남편이 아침 일찍 외출할 때마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는 개울로 통한 돌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로돌프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소를 무서워했다. 도중에 소가 있으면 숨을 죽이고 뛰어갔다.
이슬 길에 옷자락을 적시는 일이 마치 행복에 젖는 것처럼 즐거웠다. 언제나
그녀가 이렇게 헐떡이고 찾아가면 로돌프는 항상 자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면
로돌프는 새벽 이슬에 젖은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며
  "엠마, 오늘 아침은 더 예뻐 보이는군. 엠마가 오면 이 방 안이 봄을 맞는
것처럼 훈훈해지거든. 자아, 나의 귀여운 엠마!"
  하며 그녀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여자의 머리에 맺힌 이슬 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생기에 넘치는 미인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그리고 난 후 그녀는 방안을 자세히 살폈다. 가구의 서랍도 열어 보고
로돌프의 빗으로 머리를 빗어 보고 면도용 거울에도 모습을 비춰 보기도 했다.
  헤어져 돌아오려면 십오 분이면 충분했다.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눈물에 잠겼다. 일생 동안을 그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서운 힘이 자기의 등을 로돌프에게 밀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 동안 일 주일에 서너 번씩 로돌프는 해가 저문 뒤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신호로 모래를 창문에 끼얹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때로는 잠시 기다려야만 할 때도 있었다. 남편인 샤를이 왕진도 안 가고 난로
옆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이 달아
안달을 하면서도 천연스레 화장을 하고 책을 들고 침착하게 재미있는 듯 읽었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샤를은 잠시 후 자리에 들어가 벽을 바라보고
잠이 든다. 남편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그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살짝 빠져
나갔다. 로돌프는 그녀가 나오면 큰 망또로 그녀를 푹 싸서 허리를 껴안고 마당
구석으로 간다.
  사랑에 도취된 그녀는 무척 센티멘탈해졌다. 조그만 초상화를 교환하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주기도 했다. 후세를 약속하는 뜻에서 진짜 결혼반지를 갖고
싶어했다
  그녀는 몰라보리 만큼 아름다워졌다. 많은 여자를 경험한 로돌프도 이렇게
아름답고 순진한 여자를 겪어 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진실한 연애는 그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밀회는 로돌프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소문이 나는 일 없이 계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남편에 대한 그녀의 경멸과
냉대는 날이 갈 수록 더해졌다. 샤를이 어떤 환자의 수술에 실패했을 때 풀이
죽어서 수염이 꺼칠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불만은 절정에
이르렀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무능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을까 지금까지 쉴 새 없이
희생을 하고 꽃다운 젊음을 썩히다니 나는 이렇게 참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이제 출구를 원하고 있었다. 로돌프를 만나자 그녀는 마음먹은 것을
얘기했다.
  "딴 곳으로 가서 살아요. 이젠 정말 이렇게 밀회하기에 정말 싫증이 나서 견딜
수 없어요. 먼곳으로 가요"
  그녀는 정말 샤를의 곁을 떠나고 싶었다. 로돌프와의 밀회가 있은 다음은
더욱더 그랬다. 뾰족하고 긴 손, 텁수룩한 수염, 멍한 눈. 그와 반대로 로돌프의
남자답게 헌칠한 이마, 까만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얼굴, 건장하고 멋있는 몸집.
그리고 잠자는 듯한 남편의 정욕과 달리 사자처럼 맹렬하고 불꽃처럼 튀는
로돌프의 정열 그녀는 초조하고 겁이 났다. 그를 놓친다면 그녀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로돌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시겠어요? 이렇게 당신을 만나고 돌아서면 또 금방 당신이
보고 싶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로돌프에게 매달려 졸랐다. 로돌프는 보바리 부인의 정열에 끌려 함께
달아나기로 했다. 로돌프 같은 호색한도 이처럼 아름답게 다듬어진 보석과 같은
여인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로돌프는 마차의 좌석을 미리 사두고 여권도 내어 마르세이유로 같이 갈
계획을 세웠다.
  로돌프는 출발을 이틀 앞둔 토요일에 찾아왔다. 그는 준비가 덜 되었다고
2주일을 더 연기했다. 그 다음에는 몸이 불편하다고 2주일을 연기했다. 또 다시
세번째는 급한 일로 어디를 갔다 와야겠다고 2주일을 연기했다.
  로돌프는 이제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성격으로 한
여자에게 얽매어 마음에 없는 객지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연기할 도리도 없고 해서 드디어 다음 월요일에는
무조건 출발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밤 그들은 만났다.
  "준비는 다 됐어요?"
  "으음"
  "잊으신 건 없어요?"
  "으음"
  "정말이죠?"
  "물론"
  둘은 화단을 한 바퀴 돌고는 축대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우울한 것 같은
로돌프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그러나 조용히 물었다.
  "로돌프 당신은 슬프세요?"
  "그럴 리가 있소? 왜? 내가 그렇게 보이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다른 때와 달리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사랑하던 온갖 것 당신의 생활을 버리고 갈 생각 때문에 그러시죠?
알 수 있어요. 그 심정 그러나 저는 이젠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제게는
당신만이 있을 뿐이에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실거에요"
  "오, 귀여운 나의 엠마"
  로돌프는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녀는 요염한 몸짓으로 살포시 안기며 다짐했다.
  "저를 영원히 이 행복 속에 가둬 주세요. 네? 그렇다고 맹세해 주세요"
  "사랑하다 뿐이오. 마음과 몸을 다 바쳤는데. 엠마. 당신이 더 잘 알면서"
  열두 시에 종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월요일 아침 마차를 타고 이 마을을
떠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용기를 내요, 엠마. 용기를 나는 당신의 생활을 파괴하고 당신을 불행으로
이끌고 싶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후회를 한다면 고통 속에서 우린 얼마나
괴로워해야 될 것인지? 아마 당신이 사회에 흔해 빠진 천하고 경박한
여성이었다면 나는 내 편리한 대로 도피 행위를 실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엠마.
그 동안 우리는 진실했습니다. 긴 날이 지나면 같이 앉아 지난 날을 얘기하며
다정한 친구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엠마. 우리의 지난 날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같이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으실 즈음 저는
먼 곳으로 떠난 다음일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호수처럼 담담해질 때 돌아오겠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을 위한 행복이 아닐까요? 안녕'
  다음 날 오후 그녀는 부엌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 때 로돌프는 머슴
아이를 시켜 과일 바구니와 함께 이런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녀는 미친 듯이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그 곳에는 공교롭게도 남편이 있었다.
그녀는 후다닥 뛰어나와 3층으로 해서 헛간에 들어갔다.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으며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편지를 읽었다. 분노와
증오가 가슴을 에워싸고 불길을 이루었다. 로돌프의 배신 그러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든 편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읽으려고 했으나 머릿속이 어지러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죽고
싶었다. 창으로 뛰어내리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때 아래층에서 하녀가 부르는 소리에 위기를 모면했다.
  억지로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집 옆으로 파란 마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마차 속에 여행 준비를 한 로돌프를 발견하는 순간 보바리 부인은 기절하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나서 그녀는 겨우 침대 위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점점 회복되어
낮에도 몇 시간 일어나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루는 다른 때보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샤를은 그녀를 부축하여 뜰을 거닐었다.
  정원 깊숙이 의자 옆까지 왔다. 그녀는 조용히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았다.
지평선에는 여기저기에 낙엽을 태우는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여보 여기 좀 앉읍시다"
  "싫어요 거긴"
  그녀는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 통나무 의자는 로돌프와
몇 번이나 뜨거운 키스와 몸과 마음이 녹을 듯한 포옹을 하던 자리였다. 그
날부터 그녀는 병이 더 커졌다. 병세는 심해 그녀도 주위의 모든 사람도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성체를 받고 싶어했다. 신부가 불려오고 형식적인 식이
거행되었다.
  성체를 받은 후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회복되어 갔다.
  그 다음 해 이른 봄 그녀는 완쾌했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반대로 신앙심이
깊은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마을에 가난한 가정을 위해 옷도 만들어 보내고
난산으로 고생하는 집에는 장작을 보내 주기도 했다.
  남편 샤를에게는 착한 아내가 되고 딸 베르트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었다.
건강하고 명랑해졌으며 얼굴에는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여자에게 근본적인 안정과 만족을 갖다 주지도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샤를과 함께 유명한 라가르디의 오페라단이 루앙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경을 갔다. 그 곳 극장에서 그녀는 파리에 간 그 옛날의 레옹을
만났다. 레옹은 파리에서 공부한 후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바리 부인은 맵시 있게 차려입은 레옹을 보았을 때 지난 날의 연모가 다시
살아옴을 느꼈다. 레옹도 자기의 심정을 고백할 용기가 없어서 헤어지고만
여인을 우연히 다시 만날 것을 기뻐했다.
  "아니, 어떻게 해서 당신이 여기에... 그럼 루앙에 와 계신가요?"
  "네"
  "언제부터?"
  "조용히"
  하고 옆 사람이 말했다. 오페라의 막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그 여자는 벌써 무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레옹을 처음 만나던 때 딸의 유모의 집으로 가다가 만나서 산책하던 일, 날로
옆에서 마주 앉아 얘기하던 일, 정자 밑에서 책을 읽던 일, 레옹과 관계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조심스러웠고, 귀여웠던 그 가련한 연정이 가슴을 울렁대고
살아나는 것이다.
  샤를은 일이 바쁘기 때문에 오페라를 더 구경하겠다는 그녀를 루앙에 맡겨
두고 먼저 가버렸다.
  다음 날 레옹은 그녀의 호텔로 찾아왔다. 삼 년만의 해후에서 레옹은 파리에서
익힌 기교로 그리고 그녀는 로돌프와의 경험에서 얻은 용기로 그들의 사랑은
거침없이 불꽃을 튀겼다.
  "저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으나 여인숙에서 만나던 그 때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레옹의 고백을 듣자 보바리 부인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도 눈치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저는 이제 할머니가 다된 걸요. 레옹 당신은 아직 젊어요. 저 같은 것
잊어버려야 해요. 젊고 싱싱한 새로운 여자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천만에요. 저는 파리에서도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마, 당신은 정말 철부지로군요. 우리가 서로 결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눈은 레옹을 더듬고 있었다. 레옹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그녀를 포옹하며 애무하려 했다. 그러나 레옹의
애무는 장년의 로돌프처럼 대담하지 않고 성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젊은이답게
약간 겁을 먹은 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애무했다.
  레옹의 내향적인 성격이 그녀에게 커다란 유혹이었다. 남자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도 처음이었다. 그의 손길에서 그녀를 차지하려는 정욕으로 붉게 물든
레옹의 뺨을 내려다보며 엠마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정말 사랑스러운 젊은이야. 이 건장한 육체'
  그러나 거기에서 레옹을 그냥 돌려 보냈다. 그것은 그녀가 안간힘을 쓰면서
견뎌낸 이성 때문이었다.
  다음 날 그녀는 레옹과 함께 이 마을의 오래되고 유명한 사원을 보러 갔다.
  그 사원을 나오자 두 사람은 마차를 탔다. 이 마차는 상자형이었는데 타자마자
레옹은 커튼을 내려 버렸다.
  "어디로 갈깝쇼?"
  "어디든지 좋은 곳으로 갑시다"
  마차는 그랑 퐁 거리를 지나 데자르 광장 나폴레옹 강둑 그리고 뇌프 다리를
지나 피에르 코르네이유의 상 앞에서 멈췄다.
  "좀더 달려"
  안으로부터 열에 들뜬 소리가 났다. 마차는 다시 움직였다. 라파예트 광장 네
거리를 지나자 길을 똑바로 달려 옆으로 들어갔다.
  "더 앞으로 가"
  안에서는 여전히 고함을 질렀다.
  마차는 철둑을 지나 가로수 길을 천천히 달렸다. 마부는 이마에 땀을 씻으며
가죽 모자를 무릎 사이에 끼고 물가 잔디밭 가까이 갔다. 식물원 앞에서 세
번째로 섰을 때
  "더 가!"
  전보다 더 강하게 마차 안에서 소리쳤다. 마차는 그대로 달렸다. 왔던 곳을 또
오고 또 달리고 그래도 안에서는 다 왔다는 말이 없다. 마부는 하는 수 없이
달린 곳을 또 달리고 쉴 새 없이 채찍질을 했다.
  마부와 말은 똑같이 피로해져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젠장 병들이 났나?"
  혹시 병이나 난 것이 아닌가 해서 마차를 세우면
  "더 가 앞으로 더 가"
  안에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마부는 앞으로 달리면서 울상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커튼을 내린 마차가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지나가기 때문에
이상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황혼이 깃든 여섯 시쯤 되어서야 겨우 마차는 보브와진느의 어두운 뒷골목에
멈추어 서고 그 속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베일을 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마른 나무에 한 번 불을 지피면 아주 잘 타오르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은 다음 날 루앙에서 돌아왔으나 마음은 루앙에 있는 레옹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앙에 갈 핑계만 찾고 있을 때 남편이 수표 때문에
곤란을 받고 있는 것을 알자 법률적인 지식이 있는 레옹에게 의논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고 루앙으로 나왔다. 그 곳에서 삼 일 간 두 사람은 밀월과 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배를 저었다. 달이 뜨자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에 달빛 아래를
  나는 노를 저어 그대 곁에서
  웃음 지으며 뱃놀이를 했지...
  레옹은 부인이 돌아가자 부인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백만
장자가 고향을 찾아가듯 도도한 기분으로 용빌르 라베이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샤를은 레옹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했다.
  그 날 밤이 깊어서야 앞 마당의 좁은 길에서 보바리 부인과 레옹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났다. 로돌프와 만나던 그 자리에서 마침 폭풍우가 쏟아져 둘은
번갯불에 비치면서 우산 속에서 속삭였다.
  그녀는 헤어진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아아, 죽어버렸으면 이대로 죽는 대도 후회는 않겠어"
  그녀는 남자의 팔 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다.
  "안녕히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테죠"
  둘은 되돌아와서 포옹을 했다.
  "레옹.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께"
  그녀는 레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행히도 그 기회는 쉽사리 왔다. 그녀는
피아노를 조금 칠 수가 있었다. 샤를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녀가 피아노 치는 것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좀더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일 주일에 한 번 루앙에 가서 음악
교사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하자 샤를은 두말없이 찬성하였다.
  그로부터 그녀는 매주 목요일마다 루앙으로 나가 레옹과 밀회를 했다.
  목요일만 되면 소풍을 서두르는 어린애처럼 남편이 아직 잠들고 있을 때
준비를 끝마치고 루앙으로 마차를 달리는 것이었다.
  루앙에 도착하면 멀리서 마차를 내려 뒷골목으로 뛰어갔다. 어떤 모퉁이를
돌아서면 레옹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카락으로
레옹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레옹은 앞서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면 빨간 터키
산의 비단 커튼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두르고 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가린다.
  아름다운 팔로 가리울 때는 이 커튼의 주홍색과 대비되어 까만 머리와 횐
살결처럼 아름다웠다. 일 주일 동안 그리웠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때에는 그녀는 달콤한 우수에 잠기면서 말했다.
  "아아, 당신은 멀잖아 나를 버릴거야. 그리고 결혼을 하겠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라니?"
  레옹은 물었다.
  "즉 세상 남자들 말이에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고 서글프게 레옹을 밀쳤다.
  "남자란 모조리 염치없는 물건이라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그에게 숨이 막혀버릴 듯이 속삭이는 것이었다.
  "아아 움직이지 말아요. 입을 열지 말아요. 나만 바라보세요. 아이 한눈을 팔면
싫다니까"
  그녀는 베이비라고 불렀다.
  "베이비 내가 좋아?"
  그녀가 레옹의 정부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레옹이 보바리 부인의 정부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녀는 상냥한 말씨와 혼을 뺏는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레옹은 말 할 수 없이 미묘한 여성미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집에만 있을 때보다. 한결 잘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낙화생
크림을 만든다든가 식사 후에는 루앙에게 배웠다고 새로운 왈츠곡을 치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그녀를 조금도 의심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환락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했다. 레옹의 박봉으로 모라자는 돈은 전부
그녀가 지불해야만 했다. 그 외에 집안 생활도 화려해져서 커튼과 양탄자
드레스 몇 벌 화장품 값 등 2천 프랑 이상의 계산서가 밀렸다. 남편이 알면
기절할 금액의 빚이었다. 남편 모르게 비밀로 한 것이 모르는 사이에 이자가
늘고 또 어음으로 바꾸어 쓰고 한 것이 눈이 쌓이듯 늘어만 갔다.
  그녀는 신경질이 났다. 이젠 어음의 금액이 8천 프랑 가까이 되었다. 이럴 때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레옹과의 밀회뿐이었다.
  레옹은 약간 겁이 났다. 향락으로만 줄달음치려는 그녀. 그리고 식욕과 향락이
거의 병적으로 늘어만 가는 그녀에게서 빠져 나오려 하면서도 그녀만 만나면
그녀의 세계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열렬한 사랑에도 고비는 있는 것이다. 그 고비를 넘기면 그 곳에는 암담하고
뛰어넘기 어려운 절벽이 있는 것이다.
  레옹의 어머니는 레옹이 유부녀와 불의의 쾌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자
레옹의 직장 주인에게 사정 편지를 냈다. 그 주인이 레옹의 장래를 염려하여
경고를 했다.
  그 경고를 받은 레옹은 자기들의 애욕이 오래 지속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곳에서 장난을 하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보바리 부인도 이와 같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레옹과 이별을 하자
그녀는 부채에 대한 기한이 임박하여 가산이 차압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절망
속에서 돈을 만들기에 바빴다.
  처음엔 레옹을 찾아갔다. 가서 돈 이야기를 해 보자고
  "뭐요. 8천 프랑이요? 어떻게 내가 그렇게 큰 돈을...미안합니다만 나는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레옹은 이렇게 꽁무니를 빼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그런 거액의 돈을 융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최후
수단으로 로돌프를 찾아가 애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돌프는 그녀를 보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배를 문 채 그녀를 맞았다.
  "부인 오래간만이군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는 지난 날의 정욕이 솟아오르자 그녀를 포옹하고 말았다.
  "아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좋아한 건 역시 당신이었소 나는 바보요. 나쁜
놈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보바리 부인의 뺨에는 차가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는 매춘을 하러
왔구나'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자기의 운명이었다.
  "아녜요. 아녜요"
  그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자기는 지금 파산의 운명에 몰렸으며 그것을 구해
줄 사람은 당신 외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로돌프는 갑자기
떨어져 서며 냉정해졌다.
  "미안합니다만, 당신에게 융통할 만한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금전의 요구라는 것이 사랑 위에 떨어지는 모든 회오리 바람 가운데 가장
차가운 그리고 가장 환멸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엠마는 한참 동안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비굴한 말을 하지 말 걸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군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군요"
  그녀는 진심을 토로했다.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바리 부인이 돌아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녀는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아니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이 그녀에게 준 마지막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힘없이 집을 향하던 엠마는 남편의 병원에 들러서 마침 약제실에서 홀로
일하고 있는 약제사로부터 다락방 열쇠를 빼앗았다. 그리고 전에 눈에 익혀 둔
다락방 약장에서 독이라 쓴 흰 약을 한 주먹 집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체처럼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고 눈을 멍하니 뜨고 입을 벌리고 일어나려고
했다. 숨소리가 점점 그녀의 입에서 거칠어졌다. 마지막 자리를 마련하려고 온
신부가 라틴어로 속삭이는 기도도 빨라졌다. 기도 소리는 샤를의 참으려는 울음
소리와 섞여 때로는 애도의 종처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아아 상쾌한 날이야"
  "낫으로 베어 버린다"
  "장님이다. 장님이야"
  엠마는 뜻 모를 소리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잔인하게
미친 것처럼 절망적으로 웃었다.
  "그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서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갔어!"
  경련이 그녀를 쓰러지게 했다.
  모두들 가까이 갔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 갈구하던 꿈과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꿈과는 거리가 먼 돈 때문에 죽은 것이다.
  엠마가 죽은 며칠 후에 샤를은 로돌프와 레옹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 그의
아내가 자기를 속이고 있었음을 알았다. 샤를은 아내의 부정에 문을 걸어 닫고
사람의 눈을 피했다. 그에게는 배반당한 분노 때문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는 도무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햇빛이 쪼이는 뜰의 벤취에 앉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고 있었으나
언제까지나 그대로 둔다면 그는 영원히 그렇게 앉아 있을 것처럼 언제까지나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의 딸이 아버지를 찾아 뜰로 나왔다.
  딸은 아버지가 장난하기 위해 그렇게 앉아 있는 줄만 알고 뒤로 가서 그의
아버지를 가만히 밀었다.
  샤를 보바리는 그대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다.
  일체의 물건을 팔아 넘겼을 때 남은 돈이란 겨우 보바리 양이 할머니댁에 갈
여비뿐이었다. 그 할머니댁도 가난하여 보바리 양은 할 수 없이 방직 공장에
다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