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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줄거리
  -제1부-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마랑고에 있는 양로원으로부터 이러한 전보를 받고 내가 양로원을 찾아간 것은
매우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양로원의 원장은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찬 키가 작은 늙은이었다. 그는 서류를
뒤적이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뫼르소 부인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에 이 곳에 들어 왔습니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당신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가 나를 나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변명을 하려 했으나 그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어머니를 보게 해 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는 안뜰을 지나
조그만 빈소 앞에 이르렀다. 나는 원장에게 사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는 뚜껑이 덮인 관이 가로놓여 있고 기름을 칠한 판장 위에 대충 박아둔
나사못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 때 문지기가 들어와서 입관을 하였으나 볼 수
있도록 뚜껑을 열어 주겠다고 하면서 관으로 가까이 갔다. 나는 그를 멈추었다.
  "안 보시렵니까?"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라고
느껴서 매우 어색해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권하고 내 뒤에 앉았다.
문지기는 그가 양로원에 들어 오게 된 경위와 또 다른 얘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 그는 저녁을 먹으러 가라고 했으나 나는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카페 오 레를 가져오겠노라고 했다. 나는 카페 오 레를 매우
좋아했으므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니 담배가 피우고 싶었으나
어머니 시신 앞이라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조금도 꺼릴 이유가 없어서
문지기에게도 한 대 권하며 함께 피웠다.
  이튿날 아침 원장의 부름을 받고 내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말했다.
  "장의사쪽 사람들이 조금 전에 왔는데 관을 닫아야 하겠습니다. 그 전에 한 번
더 어머님을 보시겠습니까?"
  나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전화에다 뭐라고 명령을 했다.
  원장은 일어서서 사무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말했다.
  "마랑고 신부님이 벌써 오시네, 꽤 이르시군"
  빈소가 있는 건물 앞에 신부와 복사가 둘이 있었다.
  나는 곧 관에 나사못이 박히고 방 안에는 일꾼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영구차가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매우 빨리 진행되었다.
  "고인의 나이가 많았습니까?"
  영구차를 따라가는 인부가 내게 물었다.
  "꽤 많았습니다"
  정확한 나이를 몰라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신이 좀 흐리멍텅했으나 모두가 급속하고 순조로이 또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나의 기억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제 하루 일로 피로하였기 때문에 일어나기 괴로웠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생각한 끝에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우연히 우리 회사의 타이피스트로
있었던 마리 코르도나를 만났다.
  나는 그녀가 부표 위로 오르내릴 때 거들어 주었으며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
함께 헤엄을 쳤다.
  나는 저녁에 영화 구경을 가고 싶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페르낭델이 주연한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나와 그는 내 집으로
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마리는 가버리고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식도 다 끝나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녁에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와 컴컴한 계단을 올라가다가 옆방에 사는 자칭
창고 감독인 레이몽 생테스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자기 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
  술 기운이 조금씩 돌기 시작하자 그는 나에게 자기를 도와 달라면서 얘기를
꺼냈다. 머뭇거리면서 털어놓은 그의 얘기로는 며칠 전에 자기의 정부로부터
이용을 당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가 그녀의 살림을 대어 주고 있는데
그녀의 핸드백 속에는 전당표며 노름표가 들어 있고 자기가 애써 사다. 준
팔찌도 두 개씩이나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단단히 벌을 주려고
하니 나에게 편지를 한 장 써 달라는 것이었다. 여자가 그리워할 만한 사연의
편지를 써서 보내면 그녀가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음껏 짓밟아 주고
아침에 얼굴에다 침을 뱉아 내쫓아 버리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만족할 만한
편지를 써 주었다.
  일요일 아침 마리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몽이 때리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복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가 법정에 설 때는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약속했다.
  다음 일요일 마리와 함께 레이몽과 함께 해수욕을 갔다. 그런데 레이몽의
정부의 오빠가 그 일로 해서 레이몽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 아랍
사람들이 레이몽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들은 곧 버스를 타고
레이몽의 친구 마송을 찾아가 재미있게 놀게 되었다. 마송은 해변에 별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랍 사람들은 거기까지 뒤쫓아 왔다. 그들과의 싸움에서
레이몽은 팔이 찔리고 입이 찢어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 레이몽은
해변을 거닐다가 큰 바위 뒤에 있는 조그만 샘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또
다시 아랍 사람들을 만났다.
  레이몽은 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냈다. 나는 얼른 그것을 빼앗았다. 그러자
아랍인들은 뒷걸음질을 하며 바위 뒤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레이몽을 별장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해변가로 나와 바위 뒤에 있는 서늘한 샘을 찾아갔다. 나는
당황했다. 서늘한 그곳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아랍인 한
사람이 그 곳에 번듯이 누워 있지 않은가 나는 안주머니에 있는 레이몽의
피스톨을 쥐었다. 아랍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햇빛에 뺨마저 달고 땀방울이 눈썹에 맺혔다.
  그 햇빛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아랍인은 단도를 뽑아 나에게 겨누었다. 햇빛이 강철 위에 반사되어 기다란
칼날이 이마에 와서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 뜨거운
햇빛은 나의 속눈썹을 쓸고 어지러운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모든 것이 동요한 것은 나의 온 몸이 긴장하여 피스톨을 힘껏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놀라고 짤깍하고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굳어진 몸뚱이에서 다시 네 방을 쏘았다. 그것이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린 짧은 네 토막의 소리인 듯 싶었다.

  -제2부-
  체포되어 나는 여러 번 심문을 받았다. 판사는 그 날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재촉했다.
  "당신의 행동에 나로서 이해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는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확신합니다"
  나는 그 날의 사건을 요약하여 레이몽, 바닷가, 해수욕, 싸움, 다시 바닷가,
조그만 샘, 태양, 다섯 방의 권총, 쓰러진 시체까지 이야기를 마쳤다
  "좋습니다"
  다음 그는 다짜고짜로 어머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첫 번째 방아쇠를 쏠 때와 두 번째와의 사이에는 왜 간격이 있었습니까?"
  그가 말하였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붉은 바닷가를 눈 앞에 보고 뜨거운 햇볕이
나의 이마 위에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당신은 땅에 쓰러져 이미 죽은 사람 위에 다시 총을 쏘았습니까?"
  그 물음에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판사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왜 그랬어요?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예심은 십개 월이나 계속되었다. 그 동안 마리는 여러 번 찾아와서 석방되면
곧 결혼하자고 했고 해수욕도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국 여름이 지나가고 또 다시 여름이 되었다.
  아침 일곱 시 반. 나는 호송차를 타고 재판소에 닿았다.
  재판장은 서류를 뒤적이고 나서 처음으로 왜 어머니를 양로원에 넣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부양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마음이 괴로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들은 서로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었으므로 곧 그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다음으로
증인 심문이 있었다. 먼저 양로원 원장이 진술했다. 그는 어머니가 나에게 불평을
했다고 말하고 또 장례식 날 나의 냉정한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내가
어머니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무덤 앞에서
묵도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로 문지기의 진술로 그는 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 담배를 피웠다는 것 잠을 자고 까페 오 레를
마셨다는 것을 말하였다. 다음에 마리 마송 레이몽 등의 공술도 끝났다.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검사는 어머니가 죽은 뒤의 사실을
요약하였다. 내가 냉정했다는 것 어머니의 나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 이튿날
여자와 함께 해수욕을 갔었다는 것 영화 구경을 가고 마리와 함께 집으로 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레이몽과 합의하여 그의 정부를 꾀어다가 성품이 불측한 사나이의
흉악한 행위에 맡기려고 편지를 썼으며 바닷가에서는 레이몽의 적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레이몽이 다친 뒤 레이몽에게 권총을 받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할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랍 사람을 쏘아 죽인 것이다.
잔인하게도 일이 잘 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네 방의 탄환을 태연하게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쏘았다고 검사는 말하였다. 끝으로 검사는 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사형을 요구합니다"
  재판장이 나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동기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장내는 웃음으로 소란해졌다. 변호사의 긴
변론이 끝난 다음 나는 옆방으로 끌려갔다. 변호사는
  "배심원의 답신을 재판장이 읽습니다. 당신은 판결을 언도할 때에야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변호사는 나를 두고 가 버렸다. 나는 마리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재판장은
내가 프랑스 인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속 신부의 면회를 여러 번 거절하고 새벽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풀벌레의 울음 소리가 축축한
대기에 울려 퍼지고 검은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밤을 보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형제애를 느꼈다. 나는 그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