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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줄거리
  -제1막-
  '아이들의 방'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두나샤와 로파힌이 5년만에 파리에서
돌아오는 여지주 라네프스카야 부인을 기다리고 있다. 먼동이 틀 무렵이다.
5월이라 아직 공기는 차가우나 벚꽃 동산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다.
  멀리 기차가 닿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후 집에 마차가 두 대 닿는다.
라네프스카야와 딸 아냐 그리고 이들을 마중 나갔던 부인의 친오빠인 가예프
부인의 양녀로 이 집의 가정을 맡고 있는 빌랴 그리고 이 집에 70년 동안이나
일하고 있는 머슴 필즈 등이 들어온다. 부인은 울고 있다.
  "내 아이들의 방, 귀엽고 예쁜 아이들의 방... 나는 조그마할 때 이 방에서
잤지...(울면서) 지금도 꼭 난 어린아이 같아..."
  라네프스카야는 주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족도 아닌 어느 변호사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빚을 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재간도 없는 주정뱅이었다.
남편이 죽자 부인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마침내 그 사람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천벌처럼 그녀가 사랑하던 갓난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부인은 이 강물을 보고 싶지 않아 외국으로 멀리 떠났다. 그녀의 애인도 뒤를
따랐다. 애인이 병을 앓게 되었다. 부인은 멜트나의 부근에 별장을 장만하여 그를
간호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빚에 쪼들려 별장을 팔아 파리로 갔다. 애인은 딴
여자와 눈이 맞아 그녀를 버렸다. 부인은 자살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불현듯
고향과 딸 아냐가 그리워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고향은 지금은 황폐하여 이미 옛날과 같은 목가적 생활은
찾을 수 없었다. 유서 깊은 벚꽃 동산은 저당 잡혀 있었으며 여름에 경매를
당하게 되어 있었다. 부인이나 그의 오빠인 가예프는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어린아이나 다름 없었고 어떻게 할 바를 몰랐으며 그 동안 무슨 수가
생겨서 파산에서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로파힌은 이 부근의 상인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사람이었다. 그는
라네프스카야 부인 영지에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자주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이 저택에 찾아와서 부인에게 귀여움 받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인께서는 외국에서 5년 동안이나 살다 오셨으니 이제 어떻게 변했을까? 참
좋은 분이었지 언젠가 아버지한테 뺨을 얻어 맞고 코피를 흘리고 있었지 그 때
부인은 나를 이 '아이들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얼굴을 닦아 주었어 '울지
말아요. 작은 농부님 장가 갈 때까진 나을 테니까'하고 말했지...작은 농부... 사실
우리 아버지는 농부였어 나는 지금 하얀 조끼를 입고 노란 구두를 신고 있지만
돼지코를 치켜 들고 신사들 속에 한몫 낀 것뿐이고 ... 돈이야 가지고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농사꾼은 농사꾼이야... 책을 읽어보았지만 무슨 소린지도 알
수 없어 잠이 들어 버렸지..."
  로파힌은 파산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부인과 가예프에게 그들의
경제 상태를 설명하고 대책을 일러 준다.
  "아시다시피 댁의 벚꽃 동산은 저당 잡혀 팔리게 되었습니다. 8월 22일이
경매할 날이지요.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안심하고 편히 쉬세요. 빠져 나갈 길은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댁의 영지는 도시에서 25리밖에 안 떨어졌고
변두리에는 철도가 지나고 있지요. 만약 이 벚꽃 동산과 강가의 토지를
별장용으로 쪼개서 세를 내게 되면 그 임대료는 문제 없이 들어오게 됩니다...
물론 낡아빠진 이 집이나 케케묵은 벚꽃 숲은 헐고 베어 내야 합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재산을 모은 로파힌의 계산으로는 벚꽃 동산에서
2년에 한 번밖에 안 열리는 벚꽃 열매는 사갈 사람도 없고 돈벌이도 안 되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인과 가예프에게는 로파힌의 제안이 바보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도내에서 으뜸가는 자랑거리요. 백과 사전에까지 이름이
실려 있는 이 벚꽃 동산을 없애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들은 벚꽃 동산
없는 자기들의 생활을 생각할 수도 없어요.
  로파힌은 그 후로도 기회만 있으면 여러 가지로 납득시키려고 했으나 자기들의
집을 헐어 별장지로 내 주고 벚꽃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믿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라네프스카야는 재산이 없어
로파힌에게 용돈을 빌려 쓰는 형편인 지금도 길 가는 거지에게 금화를 던져
주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가진 돈을 빌려 주는 버릇을 어쩌지 못했다.
가예프는 얼음 사탕을 빠는 것과 당구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항상 쓸데없는 농담만 하고 잇는 호인에 불과했다.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는
바랴는 항상 허리춤에 쇠뭉치를 차고 말없이 싸다니며 집안을 보살피고 있었다.
가정 교사로 와 있는 프랑스 여자는 재미있는 복화술로 사람들을 웃겼다.
파리에서 제법 멋쟁이가 된 머슴 아샤는 두나샤와 희롱하고 있다. 이렇게 무기력
하고 침체한 공기 속에 명랑하고 활발한 소녀 아냐는 예전에 부인이 잃은
어린아이의 가정 교사로 이 집에 기식하고 있는 만년 대학생 트로피모프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들은 모든 과거를 깨끗이 버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씩씩한 꿈을 꾸고 있었다. 로파힌이 되풀이 주장하는 제안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라네프스카야 가예프는 여전히 무슨 좋은 수가 생겨서 빠져 나갈
구멍이 있으려니 믿고 있다. 늙은 백모가 죽으면 유산이라도 받을지 모른다는 등
꿈 같은 일만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무위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제2막-
  마침내 경매의 날은 왔다. 이 날 집에서는 무도회가 열린다.
  "예전에 이 댁의 무도회에서는 대장이나 남작이나 해군의 사령관들이 와서
춤추었건만 이제는 우체국원이니, 역장이니 하는 사람이나 모시러 가야한다. 그런
사람들도 선 뜻 나와 주지 않으려 하니... 원 제기랄"
  하인 필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예프는 경매장에 가 있다. 라네프스카야는
경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절망적인 불안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가예프와 로파힌이 들어온다. 가예프는 경매의 결과를 이야기할 기운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로파힌 누가 샀나요?"
  "제가 샀습니다. ...여러분 좀 참아 주시오. 저는 머리가 멍멍해서 말을
못하겠군요... 경매장에 가 보니 벌써 데리가노프 녀석이 버티고 있지 않아요?
가예프는 1만 5천 루블밖엔 안 가지고 계셨는데 데리가노프는 처음부터 3만을
걸었지요. 이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저는 4만을 걸었지요. 그랬더니 저쪽에서 4만
5천으로 올리기에 저는 5만 5천으로 올렸지요. 저쪽이 5천씩 올려가고 저는
1만씩 올려가서 결국 9만 루블로 낙찰 됐지요. 벚꽃 동산은 내 것이오! 내
것이오! 꿈이 아닐까? 벚꽃 동산이 내 것이 되다니! 여러분께서는 저를 술이
취하거나 돌았다고 웃으시는 모양인데 웃지 마시오. 항상 얻어 맞기만 하고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봉사놈이 세계에서 다시 없는 아름다운 영지를 샀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살이를 하면서 감히 부엌에도 못들어 가던 이 농노가
영지를 산 것이오. 여보게! 악대를 불러 실컷 떠들어 주게 로파힌이 벚꽃 동산에
도끼를 대면 나무들이 땅바닥에 텅텅 쓰러진단 말이야! 얼마 안 가서 여기에
별장이 죽 들어서고 우리 손자들과 증손자들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겠지... 자 악대들 어서 불고 치게!"
  부인은 의자에 몸을 떨어트리고 울고 있다. 로파힌은 나무라듯이 말한다.
  "마님 왜 저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이젠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눈물을
흘리며) 아아 이런 일들이 빨리 끝나 버렸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불행한
생활이 어서 끝나 버렸으면!"
  아냐가 와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위로한다.
  "엄마 엄마 듣고 계세요? 소중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엄마 난 괜찮아요.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젠 없어졌어요. 하지만 엄마 울지 말아요. 엄마의 생활은
아직 남아 있지 않아요? 엄마의 고운 마음씨도 남아 있지 않아요. 자 가요. 나와
함께 가요. 여기서 나가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뜰을 만들어요. 엄마도 그걸
보면 알게 될 거에요. 깊은 기쁨이 마치 서산에 기우는 해처럼 엄마의 마음에
스며들 거에요. 그러면 엄마도 웃을 거에요! 자 가요. 엄마!"

    -제3막-
  제1막과 같은 무대다. 그러나 이제 커튼도 없고 가구들은 쓰레기처럼 구석에
쌓여 있다. 사람들은 쓸쓸히 정든 집을 떠나간다. 벌써 가을이다. 부인은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지난 날의 애인을 찾아 파리로 가게
되었다. 아냐는 페테르부르크의 여학교로 트로피모프는 대학으로 떠난다. 바랴는
딴 집의 가정부로 옮긴다. 가예프는 월급쟁이로 은행에 취직하여 읍으로 나간다.
농부들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울지는 않고 있으나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말도 못하는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지갑에 들었던 돈을 모두 털어 그들에게 나눠
준다. 가예프가 나무라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들 뿔뿔이 이 집을 나가자
부인과 가예프만 남는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운다.
  "아아, 내 아름답고 정다운 벚꽃 동산!... 내 생활, 내 청춘, 내 행복
안녕!(아냐가 밖에서 즐거운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이
벽과 유리창을 봐야지! 이 방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즐겨 거닐던 곳이야..."
  아냐의 재촉하는 소리가 또 들린다.
  그들이 나가자 무대는 공허해진다. 사방의 문짝에 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는 고요해진다. 이 고요 가운데
벚꽃나무를 베어 내는 도끼 소리가 적막하게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병이 나서 병원에 보냈던 늙은 머슴 필즈가 나타난다.
그는 비틀 걸음으로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돌려 본다.
  "쇠가 잠겼구나 다 가버렸나 보다...(의자에 걸터앉는다) 나를 잊어버렸나
보지... 아무래도 괜찮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뭐...(무엇인지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중얼거린다) 아아 한 평생이 다 갔구나 살아 있는지 모르게
끝났구나...(눕는다) 잠깐 눕기로 하자... 필즈야 너는 이젠 다됐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제기랄 못난 녀석아!"(누운 채로 꼼짝 않는다)
  멀리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가야금 줄이 끊어지는 듯한 슬픈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꺼져간다. 고요 다만 멀리 벚꽃 동산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만이 울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