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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제4막-
  클로디어스 왕은 햄릿을 한시 바삐 잉글랜드로 추방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믿어
이튿날 아침 배에 태워 출발시켰다. 폴로니어스의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매장해 버렸다
  그러나 가엾은 희생자가 나타났다. 오필리아가 미치고 만 것이었다. 오필리아에게는
하늘같이 자비로운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죽었으니 그것이 오필리아를 미치게 하였던 것이다
솜털처럼 보드랍고 샛별처럼 맑은 처녀의 마음은 너무나도 크고 처참한 충격에 미쳐 버렸다.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했던 오필리아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궁성 안을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아티즈가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급보를 받고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성격이 곧고 정의감이 강한 레아티즈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그대로 둘 까닭이 없으리라
  젊은 레아티즈가 폭도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부수며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마침내 레아티즈는 클로디어스 앞에 나섰다. 혈기에만 맡긴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만큼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왕비는 조용하기는 하나 위엄 있게 말하였다
  "레아티즈 좀 진정하라"
  "진정할 수 있는 피가 제 몸에 있다면 그것은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이오. 저의 아버지는 어디 있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게 된 연유가 무엇이냐 말이오? 저를 속일 수는 없소.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소!"
  "이 사람아 자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확실한 사정을 알고 싶다면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친구와 원수를 분간하지 못하면서 정작 원수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때 오필리아가 노래를 부르며 나타나자 레아티즈의 심장은 찢어질 듯하였다
  "아, 이 가슴의 불꽃이여! 나의 뇌수를 태워 없애다오. 눈물이 피가 되어 앞도 못 보게
해다오. 나는 기어코 너를 미치게 한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오 아름다운 오필리아!
5월의 장미 귀여운 내 동생! 인간이란 사랑의 극치에 달할 때 사랑하는 어버이를 쫓아 그
귀중한 정성을 사랑의 표적으로 떠나보낸단 말인가!"
  그러나 오필리아는 오빠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다시는 오시지 못할 것인가?
  어찌 돌아오리오, 한 번 가신 몸
  차라리 이내 몸을 버릴까 보다

  백설 같은 흰 수염, 삼베 머리에
  이제는 영영 가고 못 오실 사람
  탄식이 무슨 소용, 도리 없구나
  저승에서 부디부디 잘 계시옵소서"

  오필리아는 노래를 부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레아티즈는 그것을 보자 한층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왕은 레아티즈에게 그 복수를 위해 조력을 하겠으니 자기를 따르라고 말하며
레아티즈를 데리고 갔다
  잉글랜드로 떠난 햄릿은 클로디어스 왕이 잉글랜드 왕에게 보내는 서신을 몰래 뜯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끔직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햄릿 왕자가 잉글랜드에 상륙하는
즉시 사형에 처하라는 것이었다. 햄릿은 편지의 사연을 자기를 따라간 두 사람의 부하를
처형하라는 내용으로 고쳤다
  이리하여 죽음을 면한 햄릿 앞에 또 하나의 장애가 나타났다. 햄릿은 해적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된 것이다. 해적들은 햄릿이 덴마크의 왕자임을 알게 되자 그를 인질로 많은 보상금을
타먹기 위해 극진히 대우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시켜 덴마크 왕 앞으로 햄릿의 사연을
편지로 보냈다. 햄릿이 무사히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자 간악한 클로디어스 왕은 모든 책임을
햄릿에게 돌려 버리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햄릿과 레아티즈는 검술에 탁월한 무사들이었다. 왕은 햄릿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두
사람이 결투를 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레아티즈가 차지할 칼끝에는 독약을 칠하여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삽시간에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햄릿을 없애 버리기
위해 레아티즈의 힘을 빌리되 국민들의 의아심을 잠재우기 위한 간계였던 것이다.
  "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의 계획이 서툴러 탄로 나면 안 되니까 만일의
경우를 위해 다음 방법을 준비해야지"
  "어떻게요?"
  "두 사람은 정식으로 내기를 하고... 옳지! 좋은 수가 있지. 두 사람이 결투를 하면
목이 마르게 될 거야. 그럴 때 그 자는 물을 청할 테니까 그 때 미리 준비해 둔 독을 탄
술잔을 내 주면 된단 말이야. 결투에서 칼을 모면했다 할지라도 그 술 한 모금만 마시면
만사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거지"
  이렇게 두 사람이 모의를 하고 있을 때 왕비가 뛰어들어 왔다
  "재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드는군요. 레아티즈! 그대의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오필리아가? 어디서요?"
  "개울가에 비스듬히 누운 버드나뭇가에서 오필리아는 그 가지에다 미나리아재비와
딸기풀과 실국화를 꺾어서 꽃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꽃 목걸이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꺾이면서 그만 시냇물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꽃송이처럼 활짝 핀 치맛자락은 물 위에 수를 놓은 듯 오필리아를 싣고서 흘러
가더니 마침내 거센 물결이 삼켜 버렸다는군요"
  여동생의 최후를 듣고 난 레아티즈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불쌍한 누이여!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 그러나 하염없이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구나. 비웃을 놈은 비웃어라. 실컷 울고 나면 여자같이 약한 마음도 가실테지...
전하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이 마음 어리석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복받쳐 오르는 눈물에 말끝을 맺지 못하는 레아티즈는 쏟살같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