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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제3막-
  궁중의 어떤 방이다
  간악한 클로디어스 왕은 갖은 수단을 써서 햄릿의 광증의 원인을 캐내려고 했으나 뜻대로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햄릿이 잘 드나드는 방에서 오필리아와 만나게 하고 그
현장을 엿보기로 하였다. 왕과 폴로니어스는 오필리아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휘장 뒤로 숨어
버렸다
  오필리아는 마음이 아프도록 괴로웠다. 왕자가 자기 때문에 그렇게 변했다면 자기에게도
왕자를 소생시킬 책임이 있으며 의무가 있다는 들었다. 그리고 자기의 진심을 속이면서까지
왕자를 대해야 하는 자신이 부질없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햄릿 왕자는 역시 헝클어진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중얼거리고
있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고 참는
것이 장한 정신인가?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난을 두 손으로 막아 그를 없애는 것이
올바른 정신인가? 죽음이란 잠자는 것 그뿐이다. 한 자루의 단도만 있다면 그 자신을 깨끗이
청산할 수 있거늘 압박자의 억울한 짓과 권세가의 무례 멸시받은 사랑의 쓰라림 법률의 태만
관리들의 오만과 덕있는 사람이 가치없는 자에게서 참고 받아야만 하는 발길질 그 모든 것을
누가 참겠느냐?"
  햄릿은 경건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오필리아를 보자 미친 사람처럼 다가갔다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도 버려야 한다.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오필리아! 그대는 정절한가?"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이여 아름다움은 당신이 타락할 수 있는 표시.
조심하시오, 여인이라면. 나는 한때 그대를 사랑했지"
  "저도 그렇게 믿었죠"
  "당신은 나를 믿지 않았어야 했소. 무엇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과 함께 죄인들을 더
만들어 내려는 게요. 나는 꽤 복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나 차라리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만큼 가지가지의 죄를 생각하고 있소. 나는 오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야심이 많은 인간이라 나의 머릿속에 사상의 옷을 입히고 형체를 입히고
숱한 죄악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소. 나같이 못된 인간이 벌레처럼 기어다니며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모두 모두 다 극악하기만 한 존재들이오. 사람이란 그렇소. 수녀원으로
가시오. 왜 사내와 사귀어 죄 많은 인간을 낳겠다는 거요! 아무도 믿지 말고 어서
수녀원으로 가시오. 아버지는 어디 있지?"
  "집에요"
  "그럼 문 밖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그만두라고 하시오. 집 안에 박혀 있으라고 하란 말이야
잘 있어요"
  "하느님 이분을 보호해 주옵소서!"
  "만약 결혼하려거든 바보와 하시오! 영리한 사람들이 당신과 결혼하면 머리에서 뿔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자 어서 수도원으로 가요. 잘 있어요"
  햄릿은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게 된 오필리아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아아 그토록 고귀하던 분이 어쩌다 저 꼴이 되었는가? 궁중의 안목이요, 학자의
달변이요, 군인의 검이요, 국민의 기대요, 나라의 꽃이시던 높으신 정신이 마침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기약의 꿀만 빨아먹고 살아 온 나는 지금 모든 여성
중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었어. 아름답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거룩하고
장하신 이상의 조화는 간 곳 없구나 아아 몹쓸 내 팔자 옛날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아련한데 지금 이 꼴을 보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오필리아는 비통을 참지 못하여 흐느껴 울었다
  햄릿과 오필리아의 만남을 몰래 엿듣고 있던 클로디어스 왕은 햄릿이 사랑으로 인해
미쳤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미친 행동 속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진실이
느껴지자 왕은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덴마크에 조공을 바쳐 오던
잉글랜드로 햄릿을 사절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색다른 환경에서 기분
전환 겸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햄릿을 추방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그 날 밤, 궁성 안에서는 연극 공연의 준비에 분주하였다. 햄릿은 직접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연극을 지도할 때 햄릿은 생기가 있었고 열성적이었다. 햄릿의 절친한 친구이자
부관인 호레이쇼에게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숙부의 표정의 변화를 살피라고 하며 햄릿은
복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마침내 왕과 왕비를 위시한 문무 백관이 장내에 모여들었다. 햄릿은 오필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희롱한다.
  "무릎 사이에 들어가도 될까?"
  "아이 참 왕자님도..."
  "아니 무릎을 좀 베자는 거야"
  "그건 괜찮아요 "
  "내가 무슨 상스러운 짓이라도 할 줄 알았어?"
  "오늘 밤은 퍽 쾌활하시네요"
  "천만에 저기 앉으신 우리 어머니의 희색 만면한 모습을 보시오.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두 시간도 못 되는데!"
  "아니에요. 두 달의 갑절은 되어요"
  "벌써 그렇게? 그렇다면 이제 나는 상복을 악마에게 물려 주고 수달의 털가죽옷이라도
입어야겠군!"
  "드디어 연극의 막이 오른다
  연극은 무언극으로 시작한다. 햄릿은 왕과 왕비의 표정을 훔쳐 본다. 다음, 극중의 왕과
왕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왕 왕과 왕비에게 자신에 대한 변심을
우려하자 왕비가 말한다.
  "당치도 않을 말씀을... 이 몸이 재가할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가지요. 전 남편을
죽인 여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두 번 째 남편을 맞이할 수 있으리오? 두 번째 남편이
침실에서 저에게 입을 맞출 때는 저는 전 남편을 두 번씩이나 죽인 셈인 됩니다"
  이 대사는 햄릿이 삽입한 것이었다. 극이 진전됨에 따라 왕비의 얼굴엔 동요의 빛이
지나갔음을 햄릿은 놓치지 않았다. 극은 바야흐로 절정에 달하여 조카가 왕의귀에
독얀을 부어 넣었다. 이 때 햄릿이 말하였다.
  "저 놈은 왕위를 빼앗으려고 정원에서 왕을 독살하는 거야. 저자는 머지않아 곤자고의
왕비를 농락할 것이다!"
  이 말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클로디어스 왕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폴로니어스는
연극을 중지하라고 고함을 친다. 왕은 몸이 좋지 않다는 구실로 왕비와 궁성 안으로
들어가자 장내는 수라장이 되었다
  햄릿은 혼령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했다. 햄릿은 앞으로의 복수에 대해 한층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 폴로니어스가 황급히 나타났다
  "전하 왕비께서 드옵시라는 분부입니다"
  한편 자기 방에 돌아온 클로니어스 왕은 분노와 공포를 억제하지 못하여 햄릿을
잉글랜드로 추방하라고 신하들에게 호령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신하에겐 잉글랜드
왕에게 보낼 서신을 주고 내일이라도 즉시 출발하라고 명령하였다.
  신하들이 물러가고 혼자 남게 된 왕은 참회와 침울한 심정으로 괴로워했다
  "아, 나의 몹쓸 죄상! 그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기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심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죄의 결과를 지니고 있으면서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아! 처참한 신세로고... 나의 가슴은 죽음처럼 시꺼멓구나 천사들이여 나를 도와
주소서! 힘을 주소서!"
  비로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듯 왕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어머니
방으로 건너가려던 햄릿은 왕의 뒷모습을 발견하자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단도를 손에 쥐어
한 발 두 발 가까이 갔다.
  '기회는 바로 이때다. 지금은 손쉽게 해치울 수 있어 하지만 저렇게 기도하는 순간에
죽는다면 숙부는 천당으로 갈 것이니 그것은 복수가 될 수 없다. 칼이여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자'
  들었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고서 햄릿은 어머니의 거실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햄릿을 본 왕비는 엄격한 어조로 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햄릿 그대는 아버님께 매우 불손했다"
  "어머니는 저의 아버님께 매우 불손하셨소"
  "너는 제 어미도 몰라보는구나?"
  "천만에요. 당신은 왕비이며 당신 남편 동생의 아내이십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나의
어머니이시죠?"
  "대체 이 어미가 어떻게 했기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정 그렇다면 누구를
부를 테다"
  공포와 분노를 떨며 왕비가 일어나려 하자 햄릿은 재빠르게 왕비의 손을 끌어
당겨 자리에 앉혔다.
  "꼼짝 말고 계세요. 그 마음 속을 거울에 환히 비춰 보일 테니. 그 때까지 못
나가십니다"
  "나를 어쩌자는 거냐? 나를 죽이려는 게로구나? 사람 살려라! 사람 살려!"
  왕비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자 휘장이 흔들리며 인기척이 들려 왔다.
  "이건 또 뭐냐? 쥐새끼냐? 죽어라 죽어!"
  햄릿은 칼을 빼들고 휘장 안을 찔렀다. 그 때까지 햄릿은 휘장 뒤에 숨은 자는 왕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진 것은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였다
  "햄릿! 이 무슨 잔인한 짓이냐!"
  "잔인한 짓? 그렇죠 어머니 왕을 죽이고 그 왕의 아우와 사는 것은 참혹하고 잔인한
짓이 아니겠지요"
  왕비는 부들부들 떨며 잠시 동안 굳어 있었다. 햄릿은 어머니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투로 화살을 쏘았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 왕비는 자책과 참회의 눈물로 하염없이 흘렸다
  바로 그 때 선왕의 혼령이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오! 하늘의 수호신이시여! 이 몸을 지켜 주소서 이 곳까지 이렇게 나타나심은 무슨
이유이십니까? 혹시 불초 자식이 때를 놓치어 복수를 소홀히 할까보아 꾸짖으러
오셨습니까?"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번에 찾아온 것은 네 결심의 칼날이 무디어질까 두려워
재촉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보아라. 네 어머니는 정신이 산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구나 네 어머니를 도와 주어라 심약한 처지에는 같은 말도 크게 울리는 것이니 자 말을
주어라"
  그러나 왕비는 이 혼령과의 대화를 듣지 못한다. 왕비는 햄릿이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도대체 그렇게 허공을 응시하고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
  "안 보이세요? 저기..."
  "아무 것도 무엇이 있단 말이냐?"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까?"
  "우리들의 말소리 밖에는"
  "앗! 저기를 보십시오. 아버님이 사라져 갑니다. 살아 계셨을 때와 똑같은 차림으로 이제
문을 열고... 아!"
  왕비는 햄릿이 이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으로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