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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제2막-
  며칠이 지난 후 폴로니어스의 저택이다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햄릿 왕자의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는 풍문이 성안에 쫙
퍼졌다
  오필리아는 황망히 아버지의 방문을 밀치며 뛰어들었다
  "아버지! 큰일났어요. 무서워요..."
  아직도 불안에 사로잡혀 초조히 서 있는 오필리아는 방금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방금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햄릿 왕자님께서 앞가슴을 풀어 헤치고 모자는
벗은 채 백지장 같은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오시잖겠어요? 그러더니 제 손목을 덥석 잡으시고
는 언제까지나 제 얼굴을 바라보시는 거에요. 왕자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지요..."
  "음... 그거야말로 틀림없는 사랑병이다. 그래 뭐라고 말씀하시더냐?"
  "아니오.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한참을 그 자세로 있으시다. 저의 팔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밖으로 나가셨어요. 저의 얼굴을 보시면서 뒷걸음으로 나가셨읍니다"
  "알았다. 그래서 정신이 이상해진 거야. 이건 지체 말고 왕께 아뢰어야지. 그것은 바로
상사병이라는 것이다. 오필리아 너 요즘 왕자에게 박정하게 한 적은 없었느냐?"
  "아뇨 다만 아버님 분부대로 왕자님이 보내 오신 편지를 돌려 보내고 만나자는 것을
거절 했을 뿐이에요"
  "내가 좀더 주의해서 살펴 볼 것을 ...이 아비는 네 몸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 왕자에 대해 지나친 의심을 했구나. 어서 가자. 왕께 이 사실을 아뢰자꾸나"
  폴로니어스의 보고를 들은 왕과 왕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햄릿의 병의 원인이
선왕의 죽음과 자기들의 결혼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의 열병에서라니 일단 안심은 되면서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왕자께서는 이 복도를 몇 시간이고
거니는 습관이 있으십니다. 그 때에 소신의 딸을 왕자와 만나게 하고 폐하께서는 소신과
함께 휘장 뒤에서 두 사람의 언행을 엿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때마침 햄릿은 헝클어진 차림새로 책을 읽으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햄릿의 발광은 사실이 아니었다. 혼령을 만난 후부터 가슴 속에 자기 대로의
계획과 각오가 자리잡게 되었다. 햄릿은 그것을 남들이 알게 되면 숙부가 그의 복수를
눈치챌 것이 우려돼 일부러 정신병자의 행동으로 가장하였던 것이다.
  햄릿은 학식이 풍부하며 문예도 능하여 귀족 자제들과 백성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명민한
머리로 복수를 계획하고 적절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복수의 계획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비록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번민은 끊이지 않았다
  햄릿을 위로하기 위해 극단의 연극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햄릿은 상연작품을 햄릿
자신이 윤색한 "곤자고의 살해"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 사람도 햄릿의 계획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배우 외에는 그 작품 내용을 미리 눈치채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을 돌려 보낸 다음 햄릿은 복수의 일념에 몸부림쳤다.
  '아 복수다. 내가 얼이 빠졌어 사랑하는 아버지가 참살 당한 아들이 천지가 원수를
갚으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뭐지? 복수하라는 엄명을 받고도 창부처럼 가슴 속에 말만
늘어놓고 막상 원수를 만나면 입 속에서는 욕설을 중얼거리면서도 매춘부처럼 가랭이를
벌리는 꼴이 참으로 장하다. 아 이게 무슨 꼴인가? 분기하라 살인의 죄는 입이 없어도
스스로 실토하기 마련이라거늘 이제 저 배우들에게 숙부의 앞에서 아버지 살해의 장면과
비슷한 연극을 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숙부의 안색을 살펴 그 급소를 찔러 보리라 그래서
깜짝 놀라면 앞으로 할 일은 뻔하다!'
  햄릿은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