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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줄거리
  -제1막-
  자정이 지난 시각 덴마크 엘시노어 궁성 앞의 말루에서 버나드는 마셀러스 호레이쇼와
괴이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정이 지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이틀을 계속 두 달
전 죽은 선왕의 혼령이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누군들 보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으랴. 버나드의 보고를 들은 호레이쇼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망루에
나타났다. 앞은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성벽의 모퉁이에 정말
혼령이 나타났다. 선왕의 모습이 틀림없었다. 혼령은 생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찌푸린 표정엔 위엄과 고통이 서려 있다. 아무리 보아도 선왕 그대로의 모습이다.
놀란 호레이쇼는 공포에 와들와들 떨면서도 멀어져 가는 혼령에게 소리친다
  "너는 누구냐? 누구이기에 한밤중에 덴마크의 선왕께서 행차하시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냐? 어서 말해라!"
  호레이쇼는 질려 있었다. 이것은 덴마크에 괴변이 일어날 징조가 아닌가? 평소 불평이 많은
마셀러스는 이 징조를 두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듯 엄중한 말을 세워 백성들을 매일처럼 못살게 대포를 만든다 외국에서
무기를 사들인다 배를 만든다 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는가? 자네들 가운데 아는 바가 있으면
속시원하게 말 좀 해 주게!"
  호레이쇼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왕께서 그의 생전에 노르웨이 국왕과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 국왕의 소유지를 바로 선왕이 빼앗았다는 것이다. 최근
선왕이 돌아가시자 노르웨이 국왕의 아들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잡병을 모아 덴마크 국경을
노리고 있으니 선왕의 혼령은 이와 관계있는 징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 다시 혼령이 나타났다. 호레이쇼는 조금 전보다 침착해져 혼령을 향해 말을 걸었다
  "섰거라! 나에게 말을 해라 만일 네게 원한이 있다면 내가 너의 원을 풀어 주어 내게도
복이 될 일을 할 것이니 말해 다오. 무엇이건 말해다오. 이 나라의 화근의 비밀을 알거든
말해 다오. 생전에 남에게 빼앗은 재물을 땅속에 묻어 둔 채 죽은 탓으로 그것을 못잊어
나타났느냐? 어서 말을 하라"
  그러나 첫닭 우는 소리와 함께 혼령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동녘 하늘엔 붉은 햇살이
뻗치고 있었다. 호레이쇼는 이 사실을 햄릿에게 보고함이 신하로서의 의무이며 친구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왕은 두 달 전 술을 마시고 잔디밭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독사에 물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선왕의 죽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의 아들인 햄릿이었다. 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자라난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져
괴로워했다. 선왕의 후임으로 햄릿의 숙부가 왕좌에 앉았으며 더욱 햄릿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선왕이 죽은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그의 어머니가 숙부와 재혼한 데 있었다. 무엇을
믿으란 말인가? 선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덴마크 영지에서 이제 햄릿
외엔 없는 것이다
  오늘도 왕비를 옆에 거느리고 그 옛날 형이 자리잡았던 옥좌에 거만스럽게 버티고 앉은
클로디어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집정 소감을 연설하고 있었다
  "햄릿 선왕께서 승하하신 지가 두 달 전이라 만백성이 수심과 슬픔의 도가니 속에서
선왕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인정과 도리이되 언제까지나 비탄의 눈물을 흘린다고 죽은
넋이 되돌아올 리 없고 험악해진 국경 지대의 형세는 일각의 지체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기쁨과 슬픔을 저울질하면서 나는 지난 날의 형수를 정궁으로 모셨노라 또한 이 문제에 대
해서는 경들이 협조하였기에 짐도 그 월등한 지혜를 굳이 막지 않았노라"
  클로디어스의 언변은 유창하고도 의젓하여 모든 신하들을 위압했다. 침통한 표정의 햄릿을
바라본 왕비는 아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사랑하는 왕자 그 어두운 얼굴빛을 던져 버리고 좀더 다정스러운 눈으로 왕을 우러러
보오. 항상 그렇게 눈을 내려 덮고 떠나신 아버님을 땅 속에서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소?
죽음이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현세에서 영원의 생명으로 지나가는 것을"
  클로디어스 왕도 햄릿의 마음을 달래느라 무척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햄릿의 마음
속에는 슬픔과 의아심과 분노가 타오를 뿐이었다. 그는 숙부인 클로디어스보다 어머니로부터
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 추하고 더러운 몸뚱어리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겨우 한 달! 거친 바람이 어머니의
뺨을 스쳐가는 것도 못 마땅히 여기시던 끔직한 사랑이었건만 그런 사랑을 주던 왕의 시체가
썩기도 전에 이 지경이 되고 말다니... 생각을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
염치도 체면도 없는 조급한 마음 어쩌면 그렇게도 재빠르게 음탕의 자리로 달려간단
말인가? 저리도 곱고 우아한 왕비의 속이 매춘부의 그것과 무엇아 다르랴 그러나 가슴이
터져도 입을 다물어야 해!'
  이 때 호레이쇼 마셀러스 버나드가 햄릿을 찾아와 간밤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듣는
햄릿은 긴장하여 심상치 않게 생각한다
  "설령 지옥이 입을 벌려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해도 나는 기어코 그 혼령에게 말을 걸
어 보겠다. 그리고 자네들은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는
말게 나는 혼령이 선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기어코 말을 걸어 보겠다. 오늘 밤엔 나도
말루에 가 보겠네 비밀을 지키게"
  세 사람은 햄릿에게 맹세를 하였다
  '아버지의 혼령이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심상치 않은데! 무슨 흉계가 있나보다. 어서
밤이 됐으면! 그 때까지만 참자 서두르지 말고 온 세상이 덮어 둔다 해도 나쁜 일이란
머리를 쳐들고 사람들 눈앞에 나타나지 말지니'
  클로디어스 왕의 심복인 폴로니어스에게는 레아티즈와 오필리아 남매가 있었다. 아버지에
비해 레아티즈는 장부답고 오필리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더구나 오필리아의 끝없이
청초한 미모는 일찍부터 햄릿의 가슴 속에 사랑의 불꽃을 심었다. 레아티즈는 프랑스 유학 도
중 클로디어스 왕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귀국하였다가 다시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햄릿과의 교제는 삼가하라는 충고를 한다
  "햄릿이 너에게 호의를 표시한다지만 그건 다 한때의 기분이니 조심하여라 방춘 가절의 한
떨기 꽃이라 오래가지 못하면 향기가 달콤하나 계속되지 못한다. 왕자의 지위니 만큼
지금은 너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가 누구를 배필로 정하느냐는 덴마크 국민이 정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그의 고백을 너무 귀담아 듣거나 매혹되어서는 안 된다. 알겠니? 오필리아
사랑하는 동생 내 말을 명심하겠지?"
  "오라버니 말씀은 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잠갔으니 열쇠는 오라버니께서 맡으세요"
  아들을 떠나보낸 폴로니어스도 역시 오필리아에게 햄릿을 조심하라고 훈계했다. 순종과
정숙의 미덕을 간직한 오필리아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려 하면서도
햄릿의 사랑이 결코 허위가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성 위의 망루는 바람이 세고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들었다. 햄릿과 호레이쇼
그리고 마셀러스는 혼령이 나타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궁성 안에서는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주연이 한창이라 밤새 가무의 환성이 그치질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혼령이 나타났다. 햄릿은 무서움도 잊고 혼령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가 천당에서 내려왔건 지옥에서 솟았건 나는 그대를 나의 왕 나의 아버님이라
부르리라 당신을 격식에 따라 땅 속에 묻은 것을 이 눈으로 보았건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수의를 찢고 나타났습니까? 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죽어 시체가 된 당신이 또다시 무장을
하고 그믐달도 어스름한 이 밤을 찾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따라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전하에게 따로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눈치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따라가야지!"
  "안됩니다. 만일 저것이 전하를 바닷가로 꾀어내든가 무서운 낭떠러지 위로 이끌면
어쩌겠습니까? 안됩니다"
  호레이쇼는 혼령을 따르려는 햄릿을 잡고 말렸다
  "나의 운명이 나를 부른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전신의 힘줄이 사자처럼 솟아오르는구나!
나를 막는 자는 목을 베어 혼귀로 만들 테다. 썩 물러나라!"
  햄릿은 날쌔게 혼령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갔다
  혼령은 성벽 아래까지 갔다
  "어디까지 가실 작정입니까? 말씀을 하십시오"
  "이제는 내 시간이 거의 다됐다. 다시 지옥의 유황 고열의 업화 속에 시달릴 때가
왔다..."
  "가엾기도 해라..."
  "너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고 이제부터 하려는 얘기를 명심하여 반드시 내 원수를
갚아야 하리라. 나는 너의 애비의 혼령이다.만일 네가 죽은 애비를 공경한다면, 인륜을
짓밟은 암살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잊지 말아라"
  "암살?"
  "그렇다.사람들은 내가 정원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 독사에게 물려 죽은 줄로 믿고 있는 모
양이니 그것은 거짓말이다.네 애비의 목숨을 빼앗아 간 독사는 지금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
는 바로 그 자니라!"
  "아! 아버님, 저의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군요"
  "그렇다. 그뿐이랴? 그 놈은 왕비의 지조까지 정욕의 노예로 삼았다. 새벽 냄새가 풍겨 오
는 것 같으니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나는 그 날도 예전과 같이 정원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네 숙부는 무서운 힘을 가진 독약을 나의 귀에 부었다. 그 독약은 삽시간에
내 육체를 수은이 돌 듯 돌았지 그것은 마치 젖에 초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맑고
고요한 나의 피를 두부처럼 굳게 하니 나의 육체는 문둥이처럼 전신에 종기가 솟았고
보기에도 흉측스런 시체로 변하였다. 이리하여 생명도 왕관도 왕비도 친동생에게 빼앗기고
말았구나 네가 나의 아들이라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게다. 그러나 아들아 네가 어떠한
수단으로 어머니는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고 가슴 속에 양심의 가책을 받게끔 내버려 두라
날이 새니 나는 가야 한다. 잘 있거라 부디 이 아비를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