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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

해설
  '최고의 작품은 최대의 상상에서 생긴다'이것이 작가로서 포의 생애의
표어였다. 보들레는 "고통과 싸우며 칼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그의 작품의 남성도 포 자신이요. 병들었으나 빛이 있고 모든 소리가 음악처럼
울리는 작품의 여성 또한 포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포는 철두 철미한 개인주의자였다. 그는 시대에 무관심했다. 외적 상황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내적 요구에 충실하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포는 시인으로서 아름다움의 창조를 시의 생명이라고 하였으며 "갈가마귀",
"헬렌에게" 등 죽음 및 우수를 테마로 하는 극히 음악적인 서정시를 지었다. 단편
작가로서는 철저하게 단일적 효과를 노려 '그로테스크 하고 아라베스크 한
이야기'에서와 같은 불유쾌 공포 우울 등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비평가로서는 "호손론", "시의 원리" 등에서 단편 소설의 이론을 수립하였고 시를
사회적인 효용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순수시론을 주장했다.
  시대 및 환경에서 이탈되어 사상성이 빈곤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와 같은
날카로운 분석적 두뇌로 오직 미의 세계만을 추구한 문학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그가 근대의 과학적 탐정 소설의 시조라는 점이다. 그의
치밀한 추리나 해석은 보통 두뇌의 작가로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작가 약전
  포는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하였다.
  부모는 가난한 순회 연극단의 배우였으며 3형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부유한 상인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 소년 시절에는 양부를 따라
영국에 가서 살기도 하였다. 후에 미국에 귀국하여 버지니아 대학에 다녔다.
젊어서 배운 술과 도박 때문에 양부와 이별하고 자립해야 할 형편에서
저널리즘에 관계하기 시작했다. 1836년에는 버지니아 클렘이라는 13세의 어린
소녀와 결혼했으나 절망과 방탕으로 인한 빈곤한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건강도 좋지 않았다. 직업을 전전하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시집과 단편집을 내어
인정을 받았으나 1849년 10월에 술집에서 폭음으로 인사 불성이 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짧고 불행한 생애였지만 그의 작가적 활동은
실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미국의 포 프랑스의 모파상
러시아의 체호프를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