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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前雀羅

2013.03.01 09:23

홍석균 조회 수:3274

 

門(문 문)前(앞 전)雀(참새 작)羅(벌일 라)
문 앞에 새그물을 쳤다는 뜻으로, 문전성시와 반대 의미다.
 
 
전한 시대 무제 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충신이 있었다.
급암은 의협심이 강하고 성품이 대쪽 같아서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편이었다.
동료 대신들이 그 점을 나무라면, 급암은 이렇게 반박했다.
"폐하께서 이 사람이나 공들 같은 신하를 두심은 올바른 보필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시고자 함인데,
누구나 듣기 좋은 말만 하여 성총이 흐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불충이 어디 있겠소?
그만한 지위에 있으면 설령 자기 한몸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폐하를 욕되게 하진 말아야 할 것이오."
그런 반면 정당시는 후덕하고 겸손하며 청렴한 인물이었다.
자기를 찾아온 손님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벼슬아치의 사명감으로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봉록과
하사품을 받으면 손님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이 두 사람은 너무 개성이 강한 탓에 경계의 대상이었고, 그 바람에 벼슬살이가 순탄하지 못해 면직, 재등용, 좌천을
거듭했다.
이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불우한 신세가 되면서 모두 발길을 뚝 끊어버려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史記로 유명한 사마천은 급암과 정당시의 전기를 쓰고 나서 다음과 같은 말로 야박한 세태를 비판했다.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자라도 권세가 있으면 빈객이 열 배로 불어나지만, 권세를 잃으면 금방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할 나위 있겠는가!
하규의 책공만 하더라도 정위가 되었을 때는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이 되고 나니까 모두들 발길을 끊는
바람에 집안이 너무나 고적해 마치 문 밖에 새그물을 쳐 놓은 것 같더라고 한탄했다."
사마천은 그런 다음 적공이 다시 복직하자 몰려오는 빈객들이 얄미워서 대문 밖에다 시 한수를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卽知交情]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貧一富卽知交態]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이 나타나네 [一貴一賤卽見交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