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입점한 사장 "매출, 1년 전보다 3배 넘게 늘었다"]
이태원 경리단길 - 세계 각국 음식점들과 옛 주택과 어우러져 이색적
압구정 로데오거리 - 분당선 들어선 이후 활기… 개통후 유동인구 3배 늘어
영등포구 당산역 일대 - 오피스텔 공급 붐 일며 20~30대 생활 주거지로 변신
"언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에요?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이라고 하셨죠?"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박모(48)씨는 인근 '경리단길'에 옷가게를 내려는 손님과 점포를 둘러보다 또 다른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상가 매물이 있는지를 묻는 문의가 빗발친다"며 "중개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요즘처럼 바쁜 때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불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이 늘고 새 점포가 잇따라 문을 여는 '잘나가는' 상권이 서울 시내 곳곳에 형성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과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 영등포구 당산역 일대가 대표적이다. 이들 상권 역시 한때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①독특한 거리 분위기 ②교통여건 개선 ③거주 인구 급증 등이 활기를 띠게 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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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민 경리단길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국군재정관리단에서 하얏트 호텔 쪽으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2차로(路) 양옆으로 아기자기하게 단장한 카페, 레스토랑, 바(bar), 네일숍 등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 '경리단길'에는 최근 4~5개월 동안 가게 6~7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태국·그리스·스페인 등 세계 각국 음식점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주변 주택과 어우러져 특색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20~30대 젊은 층이 즐겨 찾는 거리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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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5일 오후 ‘경리단길’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국군재정관리단 인근 대로변에 식당, 레스토랑, 카페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 상점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지만, 그리스·태국·일본·스페인·중동 등 전 세계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분위기를 내는 음식과 인테리어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의 다른 유명 상권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것도 자영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다. 카페 개업을 준비하는 소모(28)씨는 "홍대 주변이나 가로수길보다 월세 부담이 적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새로 문을 여는 가게가 크게 늘면서 점포 월세(33㎡ 기준)는 최근 1~2년 사이에 약 140만원에서 약 200만원으로 올랐다. 권리금도 6000만원에서 7000만~8000만원까지 높아졌다.
상권이 뜨는 만큼 매출도 올랐다. 66.9㎡ 크기의 와인바 사장 김모(30)씨는 "1년 전만 해도 매출이 2000만원대였는데, 지난달에는 7000만원대까지 늘었다"며 "33㎡대 매장들도 월매출이 2000만~3000만원은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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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선 개통으로 활기 띠는 로데오거리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주변은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부는 평일 오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골목마다 관광책자를 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최근 1년 사이 로데오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은 작년 10월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이 개통되면서부터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점포에 새 가게가 들어서고, 유명 패션 브랜드 매장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최근에는
유니클로·H&M·LG패션·리복 등 대형 의류매장이 잇따라 개장했고 화장품 브랜드 '아베다'도 오픈했다.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대형 아웃도어 매장도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 중이다.
3개월 전 이 지역에 운동화 상점을 연 배모(34)씨는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뛰어넘는 판매 실적을 냈다. 3년 전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했을 때보다 5~6개월 빨리 이익을 냈다. 배씨는 "분당신도시나 강북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쇼핑 오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예전에는 주변에 지하철역이 없어 20~30분씩 걸어야 했는데 지하철이 개통된 뒤로 유동인구가 3배 정도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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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고객으로 젊어진 당산역 주변지하철 2·9호선 당산역을 나오자 최근에 지어진 지상 20~30층 높이의 오피스텔과 사무용빌딩 10여 개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최근에 분양을 시작한 오피스텔 공사 현장도 3곳이나 있었다. 당산역 일대는 3~4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오피스텔 공급 '붐'으로 20~30대 젊은 층이 주로 생활하는 주거지로 변신했다.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데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신촌·여의도는 물론 강남까지도 20분 안에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 소비층이 바뀌면서 상권도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역 주변에 주로 있던 국밥집·주점·패스트푸드점 대신 스타벅스·투썸플레이스 등 커피전문점이나 여성복 전문 쇼핑몰 등으로 채워졌다. 낡고 허름했던 상가 건물도 새로 생긴 오피스텔로 깔끔하게 정비됐다.
G부동산중개소 직원은 "33㎡짜리 가게 월세도 최소 2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성향이 강한 20~30대 소비층을 유인할 수 있는 현대적이고 깨끗한 분위기, 편리한 교통 등이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