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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철과 피만이 통일을 가져다준다
  -비스마르크, 독일통일 달설(1871년)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1871년/신미양요로 미국과 싸움. 처화비 건립. 호포법 실시
 
  나폴레옹 몰락 후 유럽은 봉건반동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빈 체제로
불리는 이 시대를 주도한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외상 메테르니히였다. 각국의 국경선이 혁명
이전으로 되돌려지고 나라마다
일제히 봉건왕조가 부활되었다.
  독일은 빈 회의의 결정에 의해  35개 국가와 4개 자유시로  분립되었다.
프로이센은 그중의 한
소국이었다.
  1861년 즉위한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융커 출신의 비스마르크를
수상으로 등용, 독일통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융커란 독일 북동부의 지주층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군대와 고위관리의 요
직을 독점하고서 국왕의 충실한 지지기반이 되어주고 있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15년 태어났다. 그는 독일이 통일되면 프랑스,
영국 못지않은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이었다.
  청년 시절, 무려 28번의 결투를 벌인  경력을 지닌 그는 32살에
의원으로 당선,  황제 통치라야
국민이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정치가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왕은 그를
신임하여 독일 연방희회의 프로이센 대표로 임명했다. 그의 나이 36살
때의 일이다.
  비스마르크는 이 직책을 7년간 수행했고, 그후에는 러시아 대사, 프랑스
 대사로 활약하면서 무
력으로 누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 군제 개혁을 단행했다.
  '오늘의 문제는 말이나 다수결로가 아니라 오로지 철과 피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는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이른바 철혈정책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군비확장에 반대하
는 의회를 눌러 4년 동안  그 권리행사를 정지시키고 국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 군비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스마르크는 참모총장 몰트케, 육군대신 론과 함께 독일통일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통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였다.
  비스마르크는 우선 프랑스와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오스트리아를
고립시켰다. 프랑스의 나폴레
옹 3세는 라인 강 유역의 합병을 인정받는다는 조건하에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1866년 프
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오스트리아는 7주 만에 무너졌다.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 홀슈
타인, 프랑크푸르트 등을 합병하고 라인 강 이북을 손에 넣어
북독일연방을 결성했다.
  다음 목표는 프랑스였다. 비스마르크는 미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탈리아에 비밀외교를 벌여
프랑스를 원조하지 못하게 하고 교묘하게 프랑스를 유도, 선전포고를 하게
했다. 1870년 7월 마침
내 전쟁(보, 불전쟁)이 시작되었다. 전황은 프로이센에게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데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경험까지 갖춘 프로이센 군을 프랑스는 당해내지
못했다.
  8월 프랑스 군의 본거지 메스 요새가 점령당하고 이를 구원하러 나선
나폴레옹 3세가 세당에서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는 즉시 휴전을 제의했으나 비스마르크는 이를
거절하고 파리로 진격, 1871
년 1월 파리를 함락시켰다. 프랑스는 철과 석탄의 보고  알자스 로렌
지방을 떼어주고 배상금 50
억 프랑을 지불해야 했다.
  파리 함락을 눈앞에 둔 1871년  1월 18일, 빌헬름 1세는 프랑스  왕가의
상징 베르사유 궁에서
독일제국의 황제 취임식을 가졌다. 이로써  수십 개로 분립해 있던
독일연방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었으며, 프로이센의 호헨촐레른 왕가는 독일 황실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통일된 독일의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약 20년 동안
그는 탁월한 외교수완을
발휘했다. 동맹정책을 써서 독일의 지위를 강화하고 프랑스의 부흥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유럽 정치는 기실 비스마르크에 의해 움직여졌다. 때문에 이 시기를
비스마르크 시대라고 한다.
  그렇지만 유럽 각국은 독일의 팽창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카톨릭 세력과 사회
주의 세력이 성장, 그를 위협했다.  당시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라살레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각각 이끄는 두 그룹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두 그룹은 1875년
독일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고
타 강령)을 발표했으며, 1877년 12명의 의원을 하원에 내보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집회,  결사, 출판을
금지하는 한편, 질병보호법, 실업보장법, 노후보장법  등 일련의
사회복지법을 제정하여 노동자들
을 사회주의 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은
지하로 들어가 도리어 확
대일로를 걸었다.
  1890년 비스마르크는 새 황제 빌헬름 2세와의 불화 끝에 재상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불만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898년 83살로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후진국이던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대에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국가 주도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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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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