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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게르만 족, 유럽을 석권하다.
  -서로마 제국의 부활(800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751년/불국사, 석굴암 건립
  828년/장보고, 청해진 설치
 
  중세 기사들의 용맹을 노래한 서사시로 '롤랑의 노래'가 있다. 롤랑은
실제 인물로서 프랑크 왕
국의 카롤루스 대제 휘하의 기사이다.
  카롤루스 대제가 에스파냐를 정벌할 때의 일이다. 당시 에스파냐는
이슬람 교도인 사라센 인이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도시를 다 잃고 사라고사라는  도시 하남나을
지키고 있던 사라센은 강화
를 맺자는 제의를 해왔다. 카롤루스  부하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카롤루스의  조카로 용맹이
뛰어난 롤랑은 극력 반대했고, 롤랑을 미워하는 가느롱은 강화를
주장했다.
  오랜 원정에 지친 카롤루스는 사라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가느롱을  휴전회담 대표로
내보냈다. 가느롱은 이번 기회에 롤랑을 제거하려는 생각에 사라센 왕에게
귀띔을 했다.
  '롤랑이 자꾸 싸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를 없애야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본국으로 돌아갈
때 롤랑의 부대를 맨뒤로 돌려놓을테니 그때 롤랑을 공격하십시오'
  사라센 왕은 가느롱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이윽고 카롤루스 군은 철군을 시작, 피레네 산맥의 롱스포 고개에
도착했다.  그곳은 아주 가파
른 비탈 사이로 좁은 길이 하나 있을 뿐이어서 일렬종대로 한 사람씩
지나가야 했다.
  '만일 여기서 적이 기습해온다면 우린 대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후위대를  두어 뒤를 지켜야겠다.'
  카롤루스의 말에 가느롱이 얼른 대답을 했다.
  '그 임무에는 롤랑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롤루스가 망설이자 이번엔 롤랑이 나섰다.
  '폐하, 그 임무는 제가 맡겠습니다.'
  카롤루스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허락했다.
  '절대 성급히 행동하지 말라,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뿔나팔을
불어라,. 그러면  즉시 달려오겠
다.'하며 자신의 활을 건네주었다.
  '잠깐, 우리도 가겠네'
  롤랑과 함께 용맹을 날리던 11명의 기사들이 따라 나섰다.
  한편 사라센 왕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롱스포  고개에 이르렀다.롤랑의
후위대만 남은 것을 확
인한 사라센 군은 함성을 지르며 공격해왔다. 롤랑의 2만 군사는 용감히
싸웠지만 중과부적, 하나
둘 쓰러져갔다. 롤랑도 혼신의 힘을 다해 뿔나팔을  불고는 적진을 향해
뛰어들어가 장렬히 전사
하고 말았다.
  카롤루스가 달려왔을 때는 롤랑을 비롯하여 전군이 전사한 후였다. 노한
카롤루스는 배반자 가
느롱을 처형하고 다시 에스파냐로 쳐들어가 대승을 거두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유럽의  새 실력자로 떠오른 것은 프랑크
왕국이다. 라인 강 하류에
정착한 프랑크 족은 갈리아 지방 일대로 세력을 넓혀 5세기 말 프랑크
왕국을 건설했다.
  초대 왕 클로비스는 매우 영민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리우스 파인
여타의 게르만 국가들과는
달리 아타나시우스 파로 개종, 로마 교회의 지지를 얻어 영토확장에
무난히 성공했다.
  그가 죽은 뒤 내분을  수습하고 실권을 장악한  사람이 카롤루스
마르텔이고,  그 아들 피핀은
751년 국왕을 수도원 승려고 만들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바로 이 피핀의 아들
이다.
  카롤루스 대제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은 유럽 최강의 국가로 성장했다.
여기서 카롤루스 대제와
교황 레오 3세 사이에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졌다.
  당시 로마 교황은 동로마 제국의 간섭과 보호하에  있었다.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은 로마 제
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동로마  제국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교황은 새로운 후원자가 필요했다. 이대 가장 적절한  인물로 생각된 것이
프랑크 왕 카롤루스였
던 것이다. 카롤루스 역시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선 교황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 지지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800년 크리스마스 날,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제국
황제의  제관을 씌워주었다.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일개 국왕이 아닌 황제와의 제휴라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크 왕 카롤루스의 서로마 제국 황제 즉위는 유럽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이로써 침입자였던 게르만은 명실상부하게  유럽의 새
주인공으로 인정받게 되
었으며 게르만 문화와 로마 문화, 기독교가 융합된 중세 서율버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프랑크 왕국은 교황의 수호자요, 서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하며
유럽 일대를 석권하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은 부활되었으나, 그 주인은 바로  로마를 무너뜨린
당사자, 게르만 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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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8.19
21:16:43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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