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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라시아를 이은 비단길
  -한나라 장건, 비단길 개척(기원전 139-126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전 110년 경/고조선, 한강 이남의 진과 한의 교역 방해
 
  기원전 4세기 말 이래 중국은 흉노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몽고 고원에 살고 있던 흉
노는 진시황의 토벌로 잠시 주춤했다가 진이 멸망한 틈을 타서 다시
세력을  얻어 인근지역을 정
복하고 중국을 위협했다.
  한 고조 유방은 하우를 물리친 후 대대적인 흉노토벌에 나섰으나
도리어 대패 당하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그러자 수많은 금은보화와 공주를 보내 회유책을 썼다.
  기원전 2세기, 흉노는 감숙성 일대와 중앙 아시아를 손에 넣고 서방과
비단을  교역, 막대한 이
익을 얻고 있었다. 기원전 159년에 즉위한  한 무제는 역대의 굴욕을 씻기
 위해 흉노를 칠 것을
계획했다. 그는 흉노에게 쫓겨 멀리  서쪽으로 이동해간 월지국과 손을
잡고자  했지만, 월지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이때 나선 인물이 장건이다. 기원전 139년 그는 백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월지국을 찾아 떠
났다. 그러나 중국 국경을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간신히 죽음을 면
한 그는 흉노인으로 정착, 흉노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장건은 탈출하여
드디어 목적지인 월지국
에 도착했다. 월지국은 아무르 강 북안, 지금의 소련 우즈베크 공화국
부근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
다. 그러나 그들은 한나라와 손을 잡고  흉노를 공격할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한나라가
그만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중국으로 돌아오던 장건은 또 흉노의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감시병이 술에 취
한 틈을 타서 가까스로 도망친 장건은 기원전 126년, 떠난 지 실로 13년
만에 돌아왔다.
  비록 월지와의 동맹은 실패했지만, 장건이 10여 년간  보고 들은
서역지방에 대한 이야기는 무
제를 한껏 들뜨게 했다.
  '월지를 찾아 헤매던 중, 대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 포도주맛도 기가
막히지만 말 또한 뛰어납
니다. 피땀을 흘린다는 이 말은 하루 천리를 달립니다. 말이 좋은 까닭에
병사들도 말 탄 채로 활
을 쏘아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
  이것이 천마로 유명한 한혈마이다.
  기원전 123년 무제는 이 말을 얻을 욕심으로 장건을  다시 파견, 흉노를
쳐서 대완에 이르는길
을 뚫게 했다. 대완은 현재의 소련 키르기즈 공화국 페르가나 분지에
자리잡고 있던 나라이다.
  또한 장건으로 하여금 일리 강 유역의 오손과 동맹을  맺게 하였다.
장건은 기원전 112년 좋은
말 수십 필을 이끌고 돌아오는 한편 부하들을 파키스탄 북부, 이란, 인도
등지로  보내 사정을 살
피게 했다.
  무제는 흉노를 토벌하고 이광리를 보내 대완을 정복했다.  결국 흉노는
동서로 갈라진 끝에 동
흉노는 한에 항복하고, 서흉노는 외몽고로 물러갔다.
  장건의 여행경로는 천산산맥 북쪽 기슭의 천산북로를 거쳐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
아 아시아로 드어갔다가, 천산남로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천산산맥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
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한여름에도 흰눈에 덮여 있다.
  장건은 이 길을 무려 네 번이나  여행했다. 그가 개척한 길은 중요한
동서교역로가  되었다. 비
단, 거울, 칠기, 약재, 향신료, 복숭아, 살구, 닭, 제지법 등이 서역으로
전달되고, 거기서 다시 유럽
과 지중해 세계로 전해졌다. 한편 석류,  오이, 호박, 호두, 수박, 마늘,
참깨,  견직물과 모직물 등
서역의 문물이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불고,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교 등의
종교와 역법, 점성술도
이 길을 통해 소개되었다.
  중국인들은 서역에서 들어온 문물에 '호'자를 붙여  불렀다. 호떡,
호적, 호복, 호반볶음밥, 호무
는 다 이렇게 생긴 이름이다.
  비단길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 서역문물은 그대로 우리  나라에까지
전해졌다. 격구, 축구, 그
네, 윷놀이가 건너왔고, 줄타기,  땅재주, 탈춤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봉산탈춤의 주인공들이
서역 사람을 닮은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가 비단길의 서쪽
종착역이었다면, 우리 나라는
그 동방 종착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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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8.05
21:21:37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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