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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기원전 334-323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전 300년경/연이 요동에 장성 쌓음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북쪽에서 마케도니아가 세력을
키워  남하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은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를 정벌할 뜻을 세웠지만,  얼마 후 암살당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아들 알렉산더가 왕위에 올랐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였다.
알렉산더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 기원전 334년
보병 3만, 기병 5천을 이끌고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페르시아로 향한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3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소아시아 지방의 고르디온이란 곳에 이르렀다. 그 지방에는
신전 기두에 매어져 있는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란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그 전설을 들은 알렉산더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칼을 빼어 단숨에 매듭을  내리쳤다. 결국 그는 그 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소아시아를 점령한 알렉산더는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멸한 뒤,
페니키아 연안, 아프리카 북쪽 해안을 평정하여 후방을 다진 다음
페르시아 본토로 쳐들어갔다.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더에게 대패하고
도주하다가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와 페르세폴리스를 불사른 뒤, 멈추지
않고 중앙 아시아로 진격, 인더스 강 부근까지 나아갔다. 그는 갠지스
강까지  계속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오랜 전쟁에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마침내 알렉산더는 원정을 중단, 기원정 324년 바빌론으로
돌아왔다. 알렉산더가 10년 동안 정복한 곳은 서쪽으로는 마케도니아,
동쪽은 인더스 강,  남은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의 죽음은 몹시도 급작스러웠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병을 앓다가 사망한 것이다.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알렉산더의 꿈은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는 2만km에 달하는 원정길에 여러 학자들을 동행시켰다. 그리고
정복지마다  새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사드리아라 이름붙인 다음 그리스의
학자, 예술가, 상인 들을 이주케 했다.
또 그리스 인과 페르시아 인 사이의 결혼을 적극 장려, 대규모의 합동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 자신 다리우스 3세의 딸을 제2의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청년들을 그리스식으로 교육하는 한편,
페르시아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12살 때부터 3년 동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인은 노예가 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그리스 인은 부모형제처럼 대하고, 외국인은 짐승처럼 취급하라. '고
가르쳤다  한다. 비단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우리가 아주 위대하다고
알고 있는 당시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노예와  외국인, 여자는 인간, 즉 시민의 대열에 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철학이란 것이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전유물이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렉산더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모든 사람은
세게를 자기 모국처럼 생각하라. 선한 사람은 부모와 같이 대하고 악한
사람은 짐승처럼 취급하라'고 말했다 한다.
알렉산더의 동서융합 정책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를 헬레니즘
문화라고 부른다. 헬레니즘 문화의 특색은 세계동포주의와 개인주의이다.
얼핏 상반된 두 성격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실인즉 폴리스 문화의
극복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고립된 폴리스를 뛰어넘어 좀더
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고, 폴리스라는 공동체 중심의 사고로부터 개인
중심의 사고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헬레니즘이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한편으론 로마를 통해 서유럽으로
전해져서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오늘날 유럽 문화의 기저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두 흐름이다.
한편으로는 인도에 영향을 미쳐 간다라 양식이란 예술  조류를 형성했다.
이 간다라 예술은 서역지방을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이룬 대제국은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의 아내와 자식은 모두 죽음을 당했으며, 수십 년간 후계자
전쟁이 계속되다가 결국 대제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 세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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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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