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AND

한국어

Knowledge

오늘:
833
어제:
627
전체:
738,869
50. 유혈 없이 성공한 혁명
  -영국, 명예혁명 발발(1688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689년/남인 득세, 김만중, '구운몽' 지음
  1696년/안용복, 독도에서 일인을 쫓아냄
  1699년/괴질로 25만여명 사망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영국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했다.
안으로는 의회파가 장
로파, 독립파, 수평파로 갈려 그 골이 깊어만 갔고, 밖으로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반란을 일
으켰다. 뿐만 아니라 왕을 처형한 나라라 해서 유러의 군주들은 영국을
두려움과 적의 섞인 시선
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국왕의 처형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독립파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은 탁월한 정치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
랜드의 반란을 진압하여 스코틀랜드 장로파와 손잡고 왕정복고를 꾀하던
찰스 1세의 아들을 프랑
스로 쫓아버렸다. 한편 항해조례를 발표, 네덜란드와 해상권을  두고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1654
년 크롬웰은 호국경 자리에 올랐다. 그의 지지기반은 군대였다.
  그러나 크롬웰은 1658년 사망하고 그로부터 꼭 2년 만인 1660년 5월
29일 찰스  1세의 아들 찰
스 2세가 런던에 입성했다. 런던 시민은 환호하며 그를 맞아들였다.
거리는 꽃으로 수놓아지고 종
소리가 울려퍼졌으며 깃발이 휘날렸다. 창문과 발코니마다 사람들과
트럼펫 소리가 가득 차고, 수
많은 군중이 길을 메웠다. 찰스 1세가 처형당한 지 11년 만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찰스 2세에게 바란 것은 입헌군주제였다. 그러나  그는 망명지
프랑스에서 루이 14세
를 한껏 동경하며 지낸 인물이었다. 그의 꿈은 루이 14세 같은 절대군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찰스 2세는 돌아오자마자 부왕의 처형에 서명한 판사들 중 살아 있던
13명을 처형시키고 크롬웰
의 시체를 파내어 그 목을 잘라버렸다.
  그런가 하면 몰수되었던 왕당파의 토지를 무상으로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고, 카톨릭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왕당파가 왕의 비호 아래 다시 고개를 쳐들어 의회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이 의회를
'기사의회'라고 비꼬았다.
  1670년 찰스 2세는 루이 14세와 밀약을 맺었다. 자신이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대가로 20만 파운
드를 받는 외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군사원조를  받으며, 프랑스를 도와
전쟁에 참여한다는 조건
이었다.
  그의 친불정책은 국내 자본가들의 이해와 상충되는  것이었으며,
국민감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
을 끼쳤다. 카톨릭 세력만이 그를 환영했다.
  불안을 느낀 의회는 심사율, 인신보호율을  제정했다. 심사율은
비국교도를 공직에서  추방하는
내용이고, 인신보호율은 아무 이유 없이 인민을 체포, 구금하지 못하며,
구금된 자는 20일 이내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이다.
  1679년 이번엔 왕위계승 문제를 놓고  의회와 왕의 대립이 벌어졌다.
찰스 2세는 아들이 없어
그 동생 제임스가 왕위를 잇도록 했는데,  제임스는형보다 더한
전제주의자인데다 카톨릭 교도였
기 때문에 일부 의원이 반발, 왕위계승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찰스 2세는 세 번이나 의회를 해산한 끝에 제임스 배척안을 부결시켰다.
배척파들은 망명을 떠
났다. 철학자 존 로크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제임스 배척파는 청교도가 주축이었고, 반대파는 지주, 귀족,
성직자들이 중심이었다. 양파는 각
각 전자는 휘그 당, 후자는 토리 당이라 불렸다. 이것이 영국 정당의
기원이다.
  1688년 5월 제임스 2세의 두 번째 왕비 마리가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바로 명예혁명의 발
단이다. 첫째 왕비의 소생인 메리와 앤은 신교도로 어려서부터 신교
교육을 받은 터였지만 새 왕
비 마리는 카톨릭이었으므로 의회는 태어난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휘그 당과 토리 당은 손을 잡고 제임스 2세를  몰아내기로 했다. 의회가
후계자로 지명한 인물
은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와 그의 남편 오린지 공 윌리엄이었다.
  두 사람은 군대를 이끌고 런던에 입성했다. 딸과 사위에게  쫓긴 제임스
2세는 12월 왕비와 아
기를 데리고 프랑스로 망명하고 말았다.
  의회는 메리와 윌리엄을 공동 즉위시키고 유명한  '권리선언'을 승인케
했다. '권리선언'의 주요 내용은, 모든 법률의 제정 또는 폐지는 의회를
거쳐야 하며,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으로 와권을 제한하고
의회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영국에선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영국인들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성공한 명예로운 혁명이란 뜻에서 이 사건을 명예혁명이라
불렀다.
 
조회 수 :
5253
등록일 :
2013.09.30
20:19:34 (*.131.135.137)
엮인글 :
http://www.potoland.net/xe/109647/746/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potoland.net/xe/109647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3 미국 자본주의의 승리, 남북전쟁 이규 2013-10-12 4393
92 세계관을 뒤바꾼 이론, 진화론 이규 2013-10-10 4749
91 소기름과 돼지기름 이규 2013-10-09 6539
90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한 홍수전 이규 2013-10-08 5489
89 불태워진 아편 2만 상자 이규 2013-10-07 5250
88 나폴레옹, 프랑스 황제가 되다 이규 2013-10-06 5114
87 도구에서 기계로 이규 2013-10-05 5162
86 파리 시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규 2013-10-03 5595
85 보스턴 차 사건 셀라비 2013-10-02 4730
84 노예무역은 국력의 보고 셀라비 2013-10-01 4462
» 유혈 없이 성공한 혁명 셀라비 2013-09-30 5253
82 사과는 떨어지는데 왜 달은 떨어지지 않을까? 이규 2013-09-29 4424
81 조선소 노동자로 일한 황제 이규 2013-09-28 4235
80 짐이 곧 국가이다. 이규 2013-09-27 5394
79 처형당한 왕 이규 2013-09-26 5678
78 자유의 땅을 찾아서 이규 2013-09-25 5173
77 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이규 2013-09-24 4932
76 영국과 에스파냐의 해상결전 이규 2013-09-23 5279
75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규 2013-09-22 5615
74 근대과학의 아버지 코페르니쿠스 이규 2013-09-20 5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