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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세계를 불사른 두 발의 총탄
  -사라예보 사건,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4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13년/안창호, 로스앤젤레스에서 홍사단 결성
  1914년/경원선, 호남선 개통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영토인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한 사건
이 일어났다. 그날은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
조세핀은 사라예보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육군대연습을 참관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황태자 부부가 탄 오픈 카가 잠시 멈칫했다. 그때 길모퉁이에서 한
청년이 나타나 권총을 겨누
었다. 순간 총성이 울리고 차에 타고있던 황태자 부부가 쓰러졌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
다. 그러나 황태자 부부는 15분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범인은 세르비아 인 카브리엘로 프린체프, 19살의 병약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세르비아의 해방
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직원으로서, 세르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에 항거하는 뜻
으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것이다. 이를 세칭 사라예보
사건이라 한다.
  사건이 일어나자 전 유럽은 긴장했다. 발칸 반도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
역만큼 향후 정세가 어떻게 급변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발칸 반도는 유럽 제국주의 열강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
심으로 하는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범슬라브주의가
팽팽하게 맞서 문자 그대로
'유럽의 화약고'가 되어 있었다.
  세르비아는 1389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래 러시아,
투르크, 오스트리아 등 강
대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1878년 투르크의 지배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세르비아는 독립을 이
루었지만 1908년 다시 오스트리아에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당하고 말았다.
  세르비아 인들은 오랜 외세의 지배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족독립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사라예보 사건은 이런 역사적 배경아래 일어난 사건이다.
  황태자의 죽음을 전해들은 오스트리아 황실은 냉담했다.  황태자가 신분
낮은 여자와 결혼했다
는 이유로 황실의 냉대를 받고 있었다. 황태자비  조세핀은 보헤미아
백작의 딸로서 신분의 격이
낮아 공식 사교석상에서는 정식 황태자비로 대우받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의 장례식엔 황
제도 황족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 것은 세
명의 자식들뿐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취한 대외적 태도는 몹시 강경했다. 7월 23일 오후
 6시, 오스트리아는 세
르비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 내의 반 오스트리아 출판물의
금지와 반오스트리아 단체의 해산''반오스트리아 운동을 금지하기 위한
협의회와 암살자 재판에 오스트리아 대표 참여''오스트리아 정부가
지목하는 세르비아 관리 파면'등  세르비아의 민족감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세르비아는 그중 일부분만을 받아들이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때  독일은
'동맹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낸 통첩을 온건하고 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1914년 7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
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유럽 각국은 각자의 이해관계,
동맹관계에 의해 급속하게 전쟁에
휘말려들어갔다.
  당시 유럽은 이른바 삼국동맹 세력과 삼국협상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삼국동맹은 독일, 오스
트리아, 이탈리아를, 삼국협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각기 동맹국으로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동원령을 내린 것은 발칸을 잃고  싶지 않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노동자들의 파업
과 차르 타도를 외치는 혁명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므로 그 같은
내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라도 전쟁을 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도 이에 대항코자 8월 1일 러시아에, 3일에는 그 동맹국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독일군
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중립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단숨에 제압하고
프랑스로 향했다. 8월 2
일 이번엔 일본이 영, 일동맹에 따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처음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영국도 중립국 벨기에를 침범했다는 명목으로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발했다.
  11월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투르크가 독일, 오스트리아 측에
가담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온 아라비아가 투르크에 대항하여 영국 편을 들었다.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역시 참전하면 독립시켜주겠다는 영국의 약속을 믿고 적극 협력했다.
  발칸의 여러 나라들도 각각 참전했다. 불가리아는 독일 편에,
루마니아와 그리스는 연합국측에
가담했다. 바야흐로 세계전쟁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한편 사라예보 사건의 주인공 프린체프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형은 면했
다. 그러나 자신이 불지른 세계전쟁의 종말을 보지 못한 채 1918년 봄
지병인 폐결핵으로 감옥에
서 사망했다.
  그는 세계대전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견할 만큼 통찰력을 갖고 있진
못했지만, 그가 쏜 몇 발
의 총탄은 제국주의 열강의 해묵은 모순을 일거에 터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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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10.29
22:05:08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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