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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바다를 이은 최초의 운하
  -수에즈 운하 개통(1869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868년/독일인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
 
  1869년 세계 교통사상 획기적인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아메리카에서 대륙횡단철도
가 완성된 것이고, 또 하나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것이다.
그중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
와 홍해를 연결하는 대운하라는 의의 외에, 유럽 선진국들이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계
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총독은 투르크로부터의 독립
을 원하여 영국과 프랑스에 후원을 요청했다. 1859년  총독은 수에즈 운하
건설이라는 대규모 공
사를 일으켰다. 프랑스 인 리셉스가 그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영국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이 운하가 건설되면 인도양과 아시아로
가는 항로가 대폭 단축되
어 식민지 경영이 훨씬 유리해지리라는 생각에서 운하  건설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렇지만 운하의 규모상 영국의 자본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프랑스에게
합작을 청했다.
  프랑스는 영국이 이집트를 장악하면 손해를 볼 뿐이라고 생각하여
합작을 주저했다. 영국 수상
글래드스턴은 이집트에서 영국의 군사적 행동은 없을 거라고 약속,
프랑스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
했다.
  1869년 11월 17일 착공한 지 10년 만에 운하가 완공되었다. 총길이
162.5킬로미터, 바다와 바다
를 잇는 세계 최대의 운하였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런던과
싱가포르간의 항로는 2만 4천킬
로미터에서 1만 5천 27킬로미터로 절반 가량 줄어들게 되었다.
  이집트 인들은 이에 반발, 1881년 아라비 파샤의 지도하에 반란을
일으켰다.  영국은 군대를 보
내 반란을 진압하고, 이 기회에 아프리카 남부로 진출하고자 했다.
  1883년 나일 강 상류에 있는 수단에서 이슬람 교도들이 이집트와 그를
배후조종하는 영국에 대
해 성전을 선포했다. 영국은 이집트 총독의 군대 만여 명을 동원, 영국군
장군  윌리엄 힉시의 지
휘하에 수단을 정복하게 했다. 그러나 전쟁은 수단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집트  군은 이 싸움에서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글래드스턴은 새로운 수단 정복 계획을 세웠다. 1885년 영국은
고든을 수단으로 파견했
다. 그는 바로 중국에서 상승군이란  용병대를 지휘, 무력으로 태평천국
운동을  진압했던 인물이
다.
  그러나 고든 역시 수단의 지도자 마흐디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의 목은
창 끝에 꿰어져 부도덕
한 정복자의 말로서 공개되었다.
  이에 영국은 1898년 옴두르만 전투에서 기괸총으로 수단 인 11,000명을
무차별 사살, 고든의 복
수전으로 삼았다.
  그후 영국은 보어 전쟁을 일으켜 남아프리카 연방을 만들어 식민지로
삼고, 케이프, 카이로, 캘
커타를 거점으로 하는 이른바 3씨정책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영국의 뒤를 이어 유럽 열강은  질세라 아프리카로 진출했다. 지금까지
미지의 세계로 알려져
있던 아프리카 내륙지방에 대한 탐험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탐험가는 스코틀랜
드의 의사 리빙스턴과 영국인 기자  스탠리이다. 리빙스턴은 1840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약 30년
동안 아프리카 중남부 일대를 탐험했다. 그의 탐험기는 유럽 인들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기에 충분
했다.
  스탠리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후원을 받아 중앙 아프리카의
콩고를 탐험, 원주민과 협
정을 맺어 벨기에를 콩고에 진출케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열강은
앞을 다투어 탐험가를
후원하여 아프리카 진출을 서둘렀다.
  아프리카는 순식간에 서구 열강의 식민지 혹은 보호령이 되어갔다.
프랑스는 사하라 사막을 중
심으로 아프리카 서부, 북부, 중부  일대를 장악했으며, 벨기에는 콩고를,
 이탈리아는 트리폴리와
리비아를, 독일은 카메룬, 토고를 손에 넣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남은
독립국은 에티오피아와 라
이베리아뿐이었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나라간의 국경선이  다른 대륙과는 다릴
일직선으로  곧게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분할하면서 정복국의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경계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들에게 유럽 백인들이
갖다준 것은 학살과 노
예사냥, 착취와 굴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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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10.15
21:00:50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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