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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로빈 훗과 농민반란
  -영국, 와트 타일러의 난(1381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377년/최무선의 건의로 화약무기 제조 (직지심경) 인쇄
 
  로빈 훗은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그는 국왕의 사슴을 죽인 죄를
짓고 도망쳐 도적이 된
인물이다. 부패한 귀족과 성직자들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준 그를 사람들은 '의적'이라고 불렀다.
  로빈 훗의 이야기는 당시 농민들의  생활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 특히
수도원장은 대표적인 대토지 소유자였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토지는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했
다. 그들은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매우 가혹한 세금을 매기고
부역을 강제했다.
  세금을 걷어가는 것은 영주느 교회뿐이 아니었다.  백년전쟁으로
적자경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왕실 역시 농민에게 인두세를 걷어 그 적자를  메꾸어보려고 했다. 게다가
흑사병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일손이 크게 부족하게 되자,  영주들은 노동력을
확보해두려고 농민들의 이동을
강제로 막기에 이르렀다.
  로빈 훗은 바로 이런 영주들과 부패한 성직자,  말단 관리들을 처벌하고
가난한 농민들의 벗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일약 가난한 자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1381년 영국에서 대규모의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반란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와트  타일러의 난'이라 불리는 이 농민반란은 바로 로빈
훗이 활약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과중한 인두세와 강제부역으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농민들은 와트
타일러 밑으로 모여들었
다.
  '영주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바치는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강제부역을 시키려 한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그렇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힘을 합해 싸우자!'
  농민들은 농노해방, 인두세와 강제부역의 폐지를 요구하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에 가담한 것
은 농민들만이 아니었다. 부패한 사회를 비판하던 진보적 성직자들도 그
대열에 뛰어들었다.
  존 볼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아담이 밭을 갈고 하와가 베를 짤 때
누가 귀족이고 누가 농민이었는가?'
  '그 누구도 타인의 노동으로 생활해선 안된다.'
  존 볼의 설교는 농민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었다.
  반란의 불길은 급속히 번져나가 농민군의 숫자는 10만을 넘어섰고
잉글랜드의  3분의 2가 반란
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런던으로 가서 국왕에게 우리의 고통을 알리자!'
  농민군은 런던을 점령했다. 그들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움직였으며
약탈행위란 찾아볼 수 없었
다.
  국왕 리처드 2세는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가?'
  '영주로부터 자신들과 자신들의 토지를 해방시켜달라는 것입니다.'
  농민군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왕은 농민해방 헌장을 발표했다. 목적을
 달성한 농민군은 승리
의 개가를 울리며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귀족들이 이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귀족들은 왕을 부
추켜 와트 타일러를 죽여버리고 나머지 지도자들도 붙잡아 처형시키고
말았다.
  존 볼 역시 처형되었다. 반항하는 농민군을 귀족들은 무자비하게 진압,
와트 타일러의 농민반란
은 끝이 났다.
  와트 타일러의 난 이외에도 유럽 각지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1323년 플
랑드르 지방에서 발생한 농민반란은 5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처음엔
자신들에게 가해진 봉건적 부
담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점차 사회제도 전체에  대한 반항의 양상을
띠었으므로 이에 위협
을 느낀 영주들은 집단학살로 맞섰다.
  1358년에는 북프랑스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자크리의  난'이라
알려진 이 반란은 순식간에
프랑스 전체로 번져 귀족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으나 역시 귀족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가라앉았
다.
  14세기 말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은 중세 봉건사회의 경제적
기반인 장원경제가 해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갈등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 아픔의 시기를
겪으며 영주 세력은 점차 쇠
퇴해갔고 농민들 중에는 자영농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
독립 자영농은 다음에 올
새로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34. 대부호의 후원 받은 르네상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작(14세기)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388년/이성계, 위화되 회군
  1389년/박위, 쓰시마 정벌
  1392년/고려 멸망하고 이성계, 조선 건국. 정몽주 피살
 
  르네상스란 '재생' 또는 '부흥'을 의미하는 프랑스 어이다.  흔히
문예부흥이라고 번역하는데, 사실은 단순한 문예상의 부흥이 아니라
폭넓은 인간의식상의 개혁운동이었다.
  르네상스가 꽃피게 된 이면에는 상업의 발달과 그로  인한 막대한 부의
축적이 있었다. 르네상
스가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십자군 전쟁으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들은  도시의 상인이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도시들은
동방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동서무역의 중개지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에는 동방의 풍부한
물자와 문물이 쉴새없이 쏟아져들어왔다. 그러자 상인 가운데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도 그런 경우이다.
  피렌체는 본래 모직물 공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13세기경 피렌체는
봉건귀족 세력을 몰아내고
자치를 달성했다. 그런데 막대한 재력을  기반으로 하여 권력을 쥔
대상인이 시정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모직물 공업조합의 중심인물이자 금융업자인 메디치
집안이다.  메디치 가는 피렌
체의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였으며, 로렌초 메디치는 전제군주와도 같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름난 예술가들과 동로마에서 온 학자들이 그의  보호를 받고자
모여들었다. 피렌체는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비견되었다. 피렌체의 르네
상스는 메디치 가의 번영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
  르네상스가 추구한 것은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인간을 봉건제도와
교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
시켜 각자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고, 신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려는 것이 르네상
스의 기본정신이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는 봉건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마음껏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상인세력의 이해관계와 훌륭히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대부호들은
르네상스를 아낌없이 후원하고
지지했던 것이다.
  이탈리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 16세기 이후부터는
그 중심지가 북유럽으
로 옮겨졌다.
  르네상스는 뛰어난 예술가와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문학, 미술,
건축, 조각,  철학, 정치사상
등 각 분야에서 걸출한 ㅊ들이 한껏 기량을 발휘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시대가 낳은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조각가
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세운 성베드로 성당에서 99살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는 것'이라고  한 그는 사물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문학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사람은 단테와 페트라르카를 비롯하며,
'켄터베리 이야기'를 쓴
영국의 초서, '돈키호테'를 써서 중세 기사의 몰락을 풍자한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 '햄릿'으로 유명한 영국의 세익스피어가 있다. 이들은 라틴
어  일색이던 당시에 과감히 모국어로 작품을 써서 국어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철학과 정치사상면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비판적 내용의 글들이 연
이어 발표되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말한 프랑스의 데카르트, '수상록'을 쓴 몽테뉴 등이 활약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지녀야 할 냉혹하고 비열한
처세술을 피력, 주목을 끌었다.
  '군주는 인간인 동시에 야수로, 사자인 동시에 여우로 행동하는 법을
체득해야 한다. 자신의 이
익에 상반될 때는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하며 지킬 수도 없다. 정직은
언제나  불리하다. 반면 자
비롭고 청렴하며 인도적이고 신앙이 돈독한 것처럼  보이면 유익하다.
덕망으로 위장하는 것만큼
유익한 일은 없는 것이다. '
  '군주론'의 한 대목이다. 그는 또
  '종교란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에게 도의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지한 국민을 통치하기 위해서다. 사악하다고 생각되는
종교를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군주의 의무이다. '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은 내분이 그치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을  그대로 반
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인들이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였다.
그들은  중세의 억압된
분위기로부터 해방된,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고대사회를 동경했지만,
사실은  중세사회에 남아
있는 고대문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즉, 르네상스는
고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대를 향해 내디딘 첫발자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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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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