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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반은 노예요 반은 농민
  -봉건제도의 완성(10세기)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900년/견휜, 후백제 건국
  901년/궁예, 후고구려 건국
  918년/왕건, 고려 건국
 
  카롤루스 대제가 죽자 프랑크 왕국은 프랑크 족의 관습에 따라 네 명의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
되었다.
  장남 루트비히 1세가 영토와 함께 서로마 황제의 제관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정
치적으로 무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형제들과  영토분할 문제를 놓고
골육상쟁을 하다  죽고 말자,
왕국은 다시 그의 세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장남 로타르는 중부 프랑크와 이탈리아 일대, 그리고 서로마 제국 황제
칭호를 물려받ㅆ으며 3
남 루트비히 2세는 동프랑크를, 막내 칼은 서프랑크를 각각 물려받았다.
이  같은 영토분할은 843
년 베르   조약으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로타르가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그가 통치하던 지역은
870년 메르센 조약에 의해 남은 두 형제에게 또 분할되기에 이르렀다.
북동부는 동프랑크로, 서북
부는 서프랑크로, 남부는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이 메르센 조약으로
그어진 경계선이 오늘날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영토분할을 둘러싼 혈육간의 싸움으로 약화된  프랑크 왕국에 이번엔
이민족의  침입이 뒤따랐
다. 북쪽으로는 노르만 족, 즉 바이킹이 침입해들어왔고, 동쪽으로는
마자르  족이, 남쪽으로는 이
슬람 세력이 물밀 듯 밀어닥쳤다. 이들이 지나간 곳은 무차별한 약탈과
살상행위로 농작물, 가축
은 물론 사람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혼란의 시대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중세사회의 독특한 질서인
봉건제도는 바로 이 혼란
의 시대에 완성되었다.
  봉건제도란 주종제도와 장원제도가 결합된  중세 특유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적 지배질서를
말한다.
  주종제도란 주군이 신하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그 대신 신하는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여, 주군은
신하를 보호, 부양할 책임을, 신하는 주군을 위해 군사력을 제공할 의무를
 짐으로써 상호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당시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상호 계
약관계로부터 출발했다.
  토지를 매개로 한 이 주종관계는 연쇄적으로 이어져  거대한 피라미드
꼴을 이루었다. 국왕 혹
은 황제가 꼭대기에 있고, 그 밑에  봉신으로 공작이, 또 그 밑에 후작과
백작이...하는 식이었다.
평기사는 지배계급의 최말단이었으며,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는
절대다수는 농민들이었
다.
  토지는 중세사회를 유지하는 경제적 기반이었다. 봉신들은 자신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하나의 경작단위로 만들었는데 이를 장원이라 한다. 농민은 장원의
주인인 영주로부터 경작
권을 위임받는 대신 영주에게 공납과 부역의 의무를 졌다.
  영주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평기사 중엔 장원을 하나밖에 가지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어쨌든 영주는 자기 영지 내에선 왕과도 같은 절대적 존재였다.
  반면 농민에게 부과된 세금과 노역은 매우 과중한 것이었다. 노르망디
지방의 한 기록을 보자.
  '5월에는 영주의 풀밭을 깎고 건초를 나른다. 그 다음에는 도랑을
치운다. 8월에는 곡물을 거둬
들이는 부역을 해야 하고, 9월에는 돼지세를 바쳐야 한다. 돼지 중 가장
좋은 두 마리는 영주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한 마리당 각각 세금을 내야 한다. 10월에는 고정적인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겨
울이 다가오면 겨울 농사에 대비한 대대적인 부역이 행해진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케
이크와 암탉을 바쳐야 한다....'
  게다가 방앗간을 비롯해 농기계 사용로를 어김없이 내야  하고, 통행세,
사망세, 영주의 여행비
부담, 교회에 바치는 10분의 1세, 결혼하면 결혼세를 바쳐야 했다.
심지어는 초야권이란 것까지도
있었다. 즉 신부가 결혼 첫날 밤의 잠자리를 신랑이 아니라 영주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 농민의 삶은 매우 비참하고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중세는
철저한 위계질서의 사회였으
므로 농민들은 평등이란 개념은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영주에
매여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사회구조가 낳은 무거운 짐은 모두 위계질서 맨  밑바닥에 있는
농민들의 몫이었고, 교회 역시
또 하나의 영주로서 농민들 위에 군림했다. 때문에 중세 농민들을
일컫기를 반은 노예요 반은 농
민이라는 뜻으로 '농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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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2
등록일 :
2013.08.20
21:35:20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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