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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현무문의 변
  -당의 건국(618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632년/신라, 첨성대 건립
  645년/고구려, 안시성 싸움에서 당군에 승리
 
  수 양제가 친위대의 손에 죽음을 당한  뒤, 이연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당을  건국했다. 이때가
618년이다.
  고조 이연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왕세충, 두건덕을 제거하고 명실공히
 천하를 평정, 진나라,
수나라에 이어 세 번째로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건성, 세민, 원길 세 아들
들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벌어졌다. 세 아들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중에도 둘째 세민이
가장 출중했다. 당의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다름아닌 세민이었다.

  건성과 원길이 손을 잡고 자신을 제거하려는  것을 알아차린 세민은
선수를 칠  것을 결심하고
아버지 고조를 알현하였다.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이 후궁들과 결탁해서 저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신이 죽어 지하로 돌아가 왕세충과 두건덕을 만나면 그들은 꼴
좋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고 이연은
아연실색했다.
  '물러가라, 내일 아침 두 사람을 불러 이 문제를 밝히겠다.'
  그러나 이는 건성과 원길을 궁궐로 불러들이려는 세민의 계략이었다.
  무덕 9년(626) 6월 4일 새벽, 세민은 현무문에  복병을 배치했다.
현무문은 궁궐의 북문으로 황
제를 배알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었다. 일반인은 물론 관리들도
출입증을 제시해야 들
어갈 수 있는 문이므로 무장한 군사는  절대 출입할 수 없지만, 세민은
현무문  수비대장을 매수,
자기 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성과 원길은 거느리고  온 군사를 밖에 남겨둔 채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숨어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공격, 태자 건성은 일격에 쓰러지고 원길
역시 세차게 저항했지
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사건을 후세 사가들은 '현무문의 변'이라고 부른다.
  세민은 냉혹한 인물이었다. 건성의 아들 5명과 원길의  아들 5명이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3일 후 고조 이연은 세민을 태자로 봉했으며, 2개월 뒤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세민이 2대
황제 태종이 된 것이다.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권력을 잡기 위해 형제를 죽인 태종이었지만, 정치가로서는 매우
탁월했다. 그는 신하의 직간을
귀담아들었으며, 인재등용과 백성들의 부역을 경감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다.
  조용조 제도를 시행, 성년 남자에게 균등하게 세금과 부역을
부과했으며, 토지제도로는 균전제,
병제로는 특정지역에서 병사를 선발하는 부병제를 실시했다. 이런 법들은
수 양제 시절의 가혹한
착취에 비하면 백성들의 부담을 훨씬 더는 내용이었으므로 널리 환영을
받았다. 또 정부기관으로
3성과 6부를 두어 통치의 효율을 기하고 법률을 정비, 율, 영, 격, 식을
마련했다.
  대외적으로도 세력을 뻗쳐 돌궐, 위구르, 거란을 복속, 당의 영토는
서로  아랄 해, 북으로 바이
칼 호 부근 남으로는 베트남까지 확장되었다.
  정치가 안정되고 백성의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 상공업과 무역이
크게 발달, 와국의 문물이 쏟아져들어왔으며, 당나라 수도 장안은 문화의
중심지요 교역의 중심지
로 급성장했다. 신라, 일본, 인도,  아라비아, 서역 등지에서 수많은
상인들과  사절단, 유학생들이
몰려들어 장안은 인구 백만을 넘는 국제도시가 되었다.
  태종의 탁월한 정치는 '정관의 치'라 하여 후세 황제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처럼 뛰어난 업적을 남긴 태종이었지만, 그 역시 고구려 원정에는
실패했다. 수 왕조 이래 중
국은 한반도를 손에 넣고자 수차례 정복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으로 원정
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고구려와 대립하고 있던 신라로부터
원병요청이 왔다.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하여 저희 신라에서 당에 공물 바치는 길을
차단하고 입조마저 방해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실력자는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운
연개소문이었다. 태종은 연개소문의
대역죄를 응징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출병을 결심했다.
  '수나라의 멸망을 교훈삼는다면, 멀리 바다  건너 고구려를 치는 일은
중지하심이  좋을 듯합니
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관 19년(645) 태종은 진군명령을 내렸다.

  요하를 단숨에 건너 요동성을 함락하고 안시성을 공략했다. 그러나
안시성의 수비는 매우 견고
했다. 성주 양만춘의 지휘하에 군민이  하나가 되어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안시성의 농성전은
근 1년 여 지속되었다.
  계절이 바뀌어 혹한이 몰아닥쳤다. 추위와 피로에 지쳐 군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태종은
어쩔 수 없이 철군명령을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철수  도중 악천후를 만나
엄청난 사상자를 내야
했다. 고구려 원정은 대실패로 끝난 셈이었다.
  3년 후인 649년 태종은 사망했다. 불로장생 약을 잘못 먹은 탓이었다.
그의 나이 51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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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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