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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사가라드는 현존 사회주의
-소연방해체, 독립국가공동체 출범(1991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91년/국제노동기구ILO가입,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을 위한 합의서) 채택

1991년 12월 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크라프추크 우쿠라이나 공화국 대통령, 슈시케비치 벨로루스(구 백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3인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을 선언했다. 벨로루스의
부크 강변에 있는 브레스트에서 비공개회담을 가진 이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고 대신  외교, 국방 핵통제권 을 공동관장하는
독립공화국들의 공동체를 결성한다고 발표했다. 
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3개국만의 합의로 소련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고 반대했다. 
그러나 나머지 8개 공화국들이 속속  공동체 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대세가 기울자 고르바초프도 하는 수 없이 이에 승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발트 3국이 독립해 떨어져나간 후, 나머지 공화국들을 묶어 새로운
연방을 결성하려던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1917년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로 당당히 출범한 지 꼭
74년 만의 일이다. 
독립국가공동체는 겉으로는 소비에트 연방과 비슷하지만, 실인즉 아주
다르다. 우선 공동체는 구 소련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갖지 않는다. 구
연방하에서는 중앙정부 밑에 있는 행정단위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는 데
비해, 이제는 각 공화국이 저마다 하나의 독립국이 되어 독자의 법률,
정책, 외교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본부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벨로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11개 공화국 가운데 가장 큰 러시아 공화국이 공동체의
주도권을 쥐고, 그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다. 보리스 옐친을 러시아 공호국이 구 소련의 모든
채무를 승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보리스 옐친, 그는 1931년 2월 1일 우랄 산맥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설기술자가 된 그는 19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 당에서 일하다가 81년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어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와  글라스노스트 를 주창하며 소련 내부의
개혁을 단행하자, 옐친은 고르바초프보다도 더  진보적 인 개혁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자유 의 기수로 자타가 인정할 만큼 각광을 받은 것은
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용감하게도 쿠데타 군의 탱크
위에 올라가 열변을 토한 순간부터였다. 이 순간 이후 옐친은
고르바초프를 누르고 새 시대를 열 주인공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후 옐친은 고르바초프가 지니고 있던 연방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차례차례 빼앗기 시작했다.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은 구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헛된 노력에 불과하며, 연방이라는 껍데기를 고수해서는
결코 새로운 소련을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러시아
공화국이 패권을 행사하는  러시아 패권주의 에 다름아니다. 각
공화국들의 독립주권을 인정하되, 러시아 공화국의 세력권 안에
묶어둔다는 구상인 것이다. 
옐친의 계혹은 일단 성공한 듯하다. 고르바초프는 12월 26일 연방대통령
직에서 물러났으며, 독립국가공동체는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미래와 옐친의 앞날이 장미빛인 것만은 아니다. 
 독립국가공동체가 우리를 배불리 먹여주기나 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모스크바에 사는 어느 부인의 말처럼, 소련인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옐친은 그 해결책으로  시장경제로의
전환 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해온 소련을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로 바꾸는 데는 무한정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옐친
자신을 비롯하여 소련 국민의 대다수는  시장경제 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구 소연방 시절에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대신 그 관료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면, 앞으로
소련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냉혹한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존하는 법 부터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시장경제체제는 당분간 어떤 의미로든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과 같이 소련의 앞날을
우려했다. 
 ...소련사회는 정치적으로나 정신적 양면에서 다 같이
자유로워졌습니다...저는 현상황에 대한 여러분의 불만은 물론 전반적
전위체계와 저 자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
수년간의 민주적 성과들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성과들은 많은 고통과 비극을 겪을 끝에 얻어진 역사적
산물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이유 아래서도 이들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보다 나은 장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땅 속에
묻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소련은 죽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붙인 민족주의
돌풍을 너무 과소평가한 건 아니었을까? 20세기가 사회주의의 시대였다면,
그 마지막 10년의 첫해는 현존 사회주의의 대거 참잠을 알리는
서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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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12.18
21:00:11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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