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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한민족을 둘로 가른 비극의 전쟁
  -6, 25전쟁 발발(1950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1951년/거창 양민학살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1952년/발췌개헌으로 이승만 대통령 재선
 
  '25일 새벽 4시경, 38선을 경계로 서로 맞대로 있응 옹진, 개성,
동부해안 지구에서 북한군과 한
국군 사이에 전투가 개시되었다'
  로이타 통신은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의 시방을 이렇게 보도했다.
  38선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연합군측이 그어놓은 임시
군사분계선이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 38도선 이북에 소련군이, 이남에 미군이 각각 진주한 이래 남과
북의 정치상황은 급변
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에 각기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3년간은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몹
시도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은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시작되었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동두천,
포천, 의정부를 점령하
고 28일 서울시내로 진입했다.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한강  인도교
폭파를 명령했다. '아침은 서
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고 호언장담하던 이승만
정부는 개전 3일 만에 서
울을 버리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은 후가중인 트루먼 대통령을 대신하여 미군의
개입을 결정하고 유엔에
북한을 제소했다. 26일 오전 3시, 현지 시간으로 25일 오후 2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소집
되었고, 여기서 28선의 원상회복을 권고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당시
소련은 대만의 중국 대표
권 문제로 유엔 참석을 보이코트하고 있었다.
  26일 밤 10시, 일본에 주둔중인 극동사령관  맥아더에게 '즉시 한국에
출동하라'는 명령이 내렸
다. 트루먼은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27일 한국에서 미군 개입 성명서를
발표했다.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국이
최고 사령부를 구성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창설 이래 최초로 유엔 군이 조직되기에 이른
것이다. 트루먼은 맥아
더를 유엔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동원된 유엔  군은 공군의 98%,
해군의 83.3%, 지상군의
88%를 미군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맥아더에게 넘기는 한
편 주한미군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해주었다.
  한국군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낙동강까지 후퇴해 있었다. 그러나
1950년 9월 15일 유엔
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 28일 서울을 탈환했다. 그리고 북진을 계속,
38선을 넘어 평양, 원산
을 점령하고 두만강으로 진격했다.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8선의 원상회복이란 애
초의 목표는 북한일대의 석권, 나아가 중국까지 겨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맥아더는 만주
일대를 폭격했다.
  만주폭격이 감행되자, 임표 휘하의 제4야전군을 주력으로 하는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의용군'이라는 이름하에 북한군 복장을 하고
싸웠다.
  유엔 군은 북한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1950년 9월말까지
한반도에 쏟아진 폭탄은 9만
7천 톤, 네이팜 탄은 780만 갤론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사용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평양은
건물 두 채만 남기고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으며, 40만에  달하던 인구는
종전 무렵 8만으로 줄어
있었다.
  1951년 6월 24일 소련의 유엔 대표 말리크가  휴전회담을 제의했다.
이승만은 휴전회담 개최를
반대하며 북진통일을 부르짖었지만, 1951년 7월 10일 유엔 군 대표와 북한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휴전회담 본회의가 열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미국의  해리슨 소장과
북한의 남일 중장은 적
대행쥐 중지, 양군의 접촉선으로 하는 군사분계선 설정,  비무장지대
설치, 휴전 이후의 병력증강
방지, 외국군 철수와 통일방안 모색을  위한 참전 관계국간의 정치회의
개최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휴전협정에 조인했다.
  한편 그보다 한달 전인 6월 18일 이승만은 부산, 마산, 논산에 스용되어
있는 반공  포로 2만 7
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 휴전회담을 난항에 빠뜨렸다.  이것이 이른바
반공포로 석방 사건이다.
이는 중립국 감시하의 자유교환이라는 휴전회담의 합의내용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미국은 이승만을 무마시켜 휴전을 받아들이게 하는 대신  몇가지 사항을
약속했다. 즉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미국은 200만 달러를 1회분으로 하는
장기경제원조를 준다, 정치회
의가 90일 내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한, 미 양국은 회의참가를
중지한다, 한국군의 증강은 계획
대로 진행시킨다, 정치회의 개최 전에 고위급 한, 미 회담을 연다.
  1954년 4월 26일, 후전협정이 밝힌 대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치회의가
열렸다. 남한대표 변영
태 외무장관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에 의한 통일을, 북한대표 남일은
 '남북한 대표로 구성되는 전조선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대표로 참석한 주은래는 '한국정쟁 교전 당사자의 하나인 유엔은
선거감시를 공정히 할 수 없으므로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결국 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었으며,
한반도는 그 상태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전재은 양쪽 군대와 민간인을 합쳐 도합 51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남북을 막론하고 인간생활
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상처는 남북이
각각 안게 된 뿌리깊은
대립과 불신감이었다. 남과 북을 적대국가로 만든 휴전선은 단지 지리적
군사적 분계선만이 아니
라, 한민족의 몸과 마음을 ㅗ안전히 차단하는 두꺼운 벽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은 동족이라는 사
실을 잊은 듯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남한 사회를 휘어잡은 흑백논리와 반공 이데올로기, 외세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 민족주체
성의 상실 등은 실로 그 연원을 6, 25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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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6
20:22:38 (*.131.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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