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 臣 | 집 | 신하 | | | 주인과 다함께 생활하며 충성을 다하는 참모 |
가 | 신 | | | ||
가신(家臣)이란 옛날 中國이 봉건제도(封建制度)를 實施할 때 대부(大夫)階層에서 거느리고 있던 部下들을 뜻한다. 一種의 參謀인 셈이다. 大夫는 제후(諸侯)로부터 土地를 받았다. 그러나 워낙 넓어 管理를 위해 많은 신속(臣屬)들을 두었는데 그들을 통틀어 家臣이라고 했다. 家臣은 主人에게 온갖 忠誠을 다 바쳤다. 물론 그에 따른 對價는 充分히 支拂되었다. 家臣制度가 盛行한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였다. 家臣의 代表라면 단연 공자(孔子)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는 祖國 노(魯)나라가 어지럽자 일찌감치 제(齊)나라로 갔다. 그의 나이 35세때였다. 당시 齊의 大夫였던 고소자(高昭子)의 家臣이 되어 열심히 일한 結果 信任을 받게 돼 마침내 王인 경공(景公)을 만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가 家臣이 되었던 것은 自身의 政治的 理想을 實現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家臣을 둔 例가 있다. 高麗때 임금보다 더 큰 權力을 휘둘렀던최충헌(崔忠獻)이 자기 집에서 국사(國事)를 處理하면서 임금의 臣下와는 別途로 사신(私臣)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家臣이라면 國家와는 關係없이 어떤 勢力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指稱하게 되었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62 | 知 音 | 셀라비 | 2014.03.24 | 1649 |
161 | 官 吏 | 셀라비 | 2014.03.23 | 1368 |
160 | 秀 才 | 셀라비 | 2014.03.19 | 1482 |
159 | 社 會 | 셀라비 | 2014.03.18 | 1469 |
158 | 鼻 祖 | 셀라비 | 2014.03.17 | 1412 |
157 | 口舌數 | 셀라비 | 2014.03.14 | 1429 |
156 | 狡 猾 | 셀라비 | 2014.03.13 | 1428 |
155 | 完璧 | 셀라비 | 2014.03.12 | 1499 |
154 | 紅 塵 | 셀라비 | 2014.03.09 | 1511 |
153 | 復 古 | 셀라비 | 2014.03.04 | 2000 |
152 | 文 獻 | 셀라비 | 2014.03.03 | 1745 |
151 | 西 洋 | 셀라비 | 2014.03.02 | 1469 |
150 | 骨董品 | 셀라비 | 2014.03.01 | 1587 |
149 | 破 綻 | 셀라비 | 2014.02.28 | 1571 |
148 | 過猶不及 | 셀라비 | 2014.02.25 | 1412 |
» | 家 臣 | 셀라비 | 2014.02.24 | 1357 |
146 | 斷 機 | 셀라비 | 2014.02.18 | 1437 |
145 | 雙 喜 | 셀라비 | 2014.02.16 | 1460 |
144 | 小 心 | 셀라비 | 2014.02.13 | 1400 |
143 | 玉 石 | LeeKyoo | 2014.02.12 | 1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