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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09 05:30 | 수정 : 2013.11.13 17:13
'실크로드와 삼국지에 미친 사람' 허우범이 실크로드 7000㎞ 대장정 기록을 연재합니다. 지난 10년간 실크로드를 답사해온 필자 허우범은 실크로드 곳곳에 산재해있는 역사 유적지를 일일이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합니다. 이번 연재는 실크로드의 과거를 되짚는데 그치지 않고 실크로드를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동서양 소통과 융합의 현대적 의미를 독자 앞에 펼쳐 보일 것입니다./편집자 주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한무제와 이부인의 사랑

천하의 권력도 사랑만 못하다(서안1 : 한 무제와 이부인)

실크로드 탐사 경로
실크로드 탐사 경로
2013년 6월. 중국 섬서(陝西)성의 서안(西安)을 다시 찾은 나는 공항의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여 년 동안 계절을 달리하여 여섯 번을 찾았지만 이렇게 푸른 하늘을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서안의 하늘은 언제나 잿빛이었다. 그런데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실크로드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 그 출발점을 찾아온 나그네를 하늘이 이토록 먼저 반겨주니 매우 상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순간 나는 직감하였다. ‘나의 실크로드 여행이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서안 시내 실크로드 출발점의 석상.
서안 시내 실크로드 출발점의 석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서안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 터키와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무역로를 말한다. 고대로부터 수천 년을 이어오는 이 무역로를 통하여 도자기, 향신료, 유리, 보석, 쌀과 밀 등 인류가 생산해 낸 모든 물건들이 거래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값어치 있고 주된 교역물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비단이었다. 그래서 ‘실크로드’라고 부른다.

서안은 옛날에 장안(長安)으로 불렸는데, 한당(漢唐)시대에 이미 세계적인 도시였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여 제국의 체제를 갖추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다방면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우위를 바탕으로 ‘실크로드’라는 길을 통해 동서 문명교류를 증대시켰다.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와 상품들의 교역로이기 이전에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전설과 모험이 넘치는 신비의 땅이며 누구나 찾아가고픈 동경의 대상이다. 그것은 실크로드가 물류(物流)와 함께 ‘인류(人流)’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속에는 국가와 도시문명의 흥망이 있고 아울러 다양한 인간 군상의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隊商)들의 낙타행렬만이 실크로드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 종교, 학문, 전쟁 등 인류사의 모든 것이 이 길을 통해 오갔다. 인간이 길을 내고 그 길 위로 인간이 만든 모든 정신적 물질적 문명들이 이동한 길, 그 길이 곧 실크로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서안이다.
한무제 초상 (왼쪽),한무제의 무릉.
한무제 초상 (왼쪽),한무제의 무릉.
천하의 중심이었고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던 장안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실크로드가 번성한 것은 당나라 때의 장안이다. 하지만 실크로드가 본격적으로 개척되던 시기는 한나라 무제(武帝) 시기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향하는 나의 첫 목적지도 당연히 무제가 잠들어 있는 무릉(茂陵)이다.

무릉은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0㎞, 서안 시내서 서북쪽으로 40㎞ 떨어진 흥평시(興平市) 무릉촌(茂陵村)에 있다. 이천 여년의 세파에도 불구하고 평지 위의 무릉은 아직도 산처럼 우뚝하다. 능을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은 무제를 호위하는 철갑군 같다. 오랜 시간 무너지고 주저앉았을 터인데 지금도 이토록 웅장하다면 당시에는 어느 정도였을까. 무제 시대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각종 조세를 강화하여 경제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무제는 이를 바탕으로 이제까지 수세에 몰렸던 흉노공략을 시작한다.

천하를 호령했던 무제도 세파의 찌듦이 역력한가. 무릉의 묘비석에는 온통 낙서투성이뿐이다. 흉노를 몰아내고 중국 최고의 영토를 확장한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당도 기념관도 없다. 오직 능만이 벌판에 덩그러니 산처럼 솟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앞뒤 좌우로는 농작물을 심은 밭과 과수원이 좁은 입구를 감싸고 있다. 무릉 주위에는 배장묘가 여럿 있다. 그중 제일 가까운 서북쪽에 무제 말년의 애첩(愛妾)인 이부인(李夫人)묘가 있다.
이부인 묘에서 본 무릉.
이부인 묘에서 본 무릉.
전한 때에는 황제와 항후의 능은 나란히 배치를 하였는데 황제릉은 서쪽, 황후릉은 동쪽에 위치했다. 그런데 무릉은 동쪽에 황후의 릉이 없다. 무제에게 진황후와 위황후 두 명의 황후가 있었다. 하지만 진황후는 폐위되었고, 위황후는 무고(誣告)에 휩싸여 자살하고 말았다. 이런 까닭에 황후의 능이 없고 대신 무제가 말년에 의지했던 이부인의 묘가 있다. 그런데 황후의 서열에 오르지 못해 동쪽에 위치하지 못하고 무릉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부인 역시 비천한 출신이다. 그녀의 오라버니인 이연년(李延年)은 가무(歌舞)가 뛰어난 배우였다. 작곡에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 감미로운 선율로 변주곡(變奏曲)을 만들어 불렀는데, 무제는 물론 모두가 좋아했다. 어느 날 이연년은 무제 앞에서 춤추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다.

북방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어 北方有佳人
세상 제일의 미모를 독차지 했구나 絶世而獨立
한 번 웃음 지으면 온 성이 무너지고 一顧傾人城
두 번 웃음 지으면 온 나라가 기울어지네 再顧傾人國
성과 나라가 기우는 것을 어찌 모르랴마는 寧不知傾城與傾國
천하의 아름다운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려운 법 佳人難再得

이 노래를 들은 무제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이 노래의 주인공임을 알고 탄복하여 그날부터 이부인을 애첩으로 삼는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는 말처럼 이부인은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황제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데, 경국지색을 보내야 하는 황제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지겠는가. 어여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 찾아왔으나 이부인은 보여주지 않는다.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거듭 당부하고 어르지만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황제는 속상해하며 떠나고, 자매들은 이부인을 탓한다.
한나라 때 궁전인 미앙궁(未央宮) 터.
한나라 때 궁전인 미앙궁(未央宮) 터.
“폐하께서 알고 계신 얼굴은 예전의 내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면 황제는 놀라서 우리 식구들을 절대로 보살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부인의 이 판단은 정확했다.

그녀가 죽자 무제는 이연년을 악부의 장관인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한다. 그리고 또 한명의 오빠인 이광리(李廣利)는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삼는다. 이부인에 대한 무제의 애틋한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나라의 방사 소옹(少翁)을 시켜 이부인의 혼령을 불러오게 하고, 그 애절함에 겨워 노래까지 불렀다.

부인이오, 아니오? 是邪非邪
내 멍하니 서서 그대만을 바라보노니 立而望之
어이 이다지 나폴나폴 더디게만 오시는가偏何姗姗其來遲

뛰어난 문인이었던 황제였기에 이부인의 죽음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한서』「이부인전」을 보면 총희(寵姬)에 대한 무제의 애타는 마음이 한 편의 부(賦)에 절절하게 나타난다.

저토록 밝은 세상 두고 去彼昭昭
어둠의 세계로 떠나갔구려 就冥冥兮
신궁으로 내려가면 旣下新宮
다시는 옛 터로 돌아오지 못하나니 不復故庭兮
아아, 애달프도다! 嗚呼哀哉
그리운 혼령이 이토록 아른 하거늘 想魂靈兮

사랑은 권력보다 강하다. 권력은 처음 잡을 때는 무한한 힘을 가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진다. 사랑은 다르다. 처음엔 밋밋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틋한 그리움이 수시로 요동쳐 보고픈 마음은 한시도 식을 줄 모른다. 권력은 사랑을 버릴 수 있지만 사랑은 권력마저도 포기하게 만든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지만, 가장 두려운 것도 사랑이다. 천하의 제왕 무제도 평생 많은 여인을 거느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그리웠다. 많은 여인들 속에서 무제가 원하는 사랑은 이부인이었다. 하지만 정들 무렵 이별이라면 그 사랑은 애가 끊어지는 처절함이 된다. 천하의 권력을 다 가졌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크지 않은 이부인묘가 광활한 벌판에 홀로 다소곳하다. 무제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여 황후에 준하는 장례를 치르고 그녀의 묘를 ‘영릉(英陵)’으로 불렀다. ‘꽃’처럼 어여쁘고 ‘옥’처럼 귀한 여인이 잠든 곳이라는 의미다. 무제의 애끊는 사랑이 최고의 예우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부인묘는 그러한 예우에 개의치 않고 일편단심 동남쪽의 무릉만 바라보고 있다. 산 같은 무릉도 고적한 동풍이 싫어 서북쪽의 영릉을 향해 앉았다. 525m. 오작교 없는 벌판엔 철책이 가로 막고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손잡고 있을 수 없어 애틋한 그리움으로, 절절한 아림으로 오늘도 영원히 마주보아야만 하는 사랑.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만이 흐느낌으로 애절함으로 사랑의 언어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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