包靑天 | 쌀 | 청 | 하늘 | | 북송때 실존했던 청백리 |
포 | 청 | 천 | | ||
포청천(包靑天․999~1062)이 實存했던 人物이냐는 質問을 받곤 한다. 물론이다. 그는 北宋 때의 人物로 포(包)는 성(姓)이요 청천(靑天)은 「푸른 하늘」도 되지만 「청백리(淸白吏)」란 뜻도 있다. 그의 이름은 증(拯),자(字)는 희인(希仁)으로 합비(合肥)사람이었다. 官吏로 在職때 청렴결백(淸廉潔白)했음은 물론 강직(剛直)한 性品에다 直言을 서슴지 않았으며,특히 抑鬱한 百姓의 苦衷을 解決하는 등 正義를 實踐하는데 앞장 섰던 人物이다. 요컨대 그는 庶民편에 섰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中國이나 우리나라에는 淸白吏보다 貪官汚吏가 더 많았다. 따라서 淸白吏는 그만큼 돋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 包靑天은 그런 점에서 가히 獨步的인 存在라할 만하다. 그에 관한 逸話는 많다. 그가 都邑地 개봉(開封)의 지부(知府=市長)로 있을 때였다. 그곳을 흐르고 있던 혜민강(惠民江)이 氾濫해 危殆롭게 됐다. 알고 보니 貴族과 富豪들이 강에다 亭子를 지어놓아 물길을 막았기때문이었다. 당장 撤去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또한 勤儉節約을 生活信條로 삼아衣食住를 平民과 다름없게 했으며, 豫算 浪費를 줄이기 위해 天子에게 直諫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종(仁宗)이 상사(賞賜=신하에게 내리는 下賜品)를 마구 행하자 즉시 中斷할 것을 상주(上奏)했으며 火災로 불탄 상청사(上淸寺)를 重建하려 하자 制止하기도 했다. 그의 强直한 人品은 後世에 길이 전해져 中國小說이나 戱曲에서 그를 다투어 稱頌1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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