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卜商)은 자를 자하(子夏)라 했고, 공자보다 44년 아래였다.
자하가 “‘웃을 때 보이는 어여쁜 보조개, 초롱한 눈 곱기도 하여라.
바탕색을 그 위에 보태니 더욱 아름답구나’라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그림을 그린 뒤 바탕색을 더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자하가 “예가 그 다음이란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복상이 이제야 나와 『시(詩)』를 말할 수 있겠구나.”라고 했다.
자공이 “사(師, 자장)와 상(商, 복상) 누가 더 뛰어납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복상은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한 것이나 같다.”라고 했다.
공자가 자하에게 “너는 군자유(君子儒)가 되어야지 소인유(小人儒)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공자가 죽자 자하는 서하(西河)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베풀면서 위(魏) 문후(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그 아들이 죽자 슬퍼하다가 눈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