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AND

한국어

Knowledge

오늘:
1,053
어제:
1,186
전체:
764,742

理判事判

2013.03.07 20:31

이규 조회 수:1403


理 다스릴리
判 쪼갤판
事 일사
判 쪼갤판

 

 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다른 상황에 이름


  朝鮮時代 抑佛政策은 僧侶들로 하여금 두가지 方向에서 活路를 模索케 했다.  寺刹을 存續기키는 것과 佛法의 脈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一部 僧侶들은 廢寺를 막기 위해 온갖 苦難을 이겨내고 寺院의 維持 經營에 獻身했다.  이와는 달리 俗世를 피해 隱遁하면서 參禪과 讀經으로 佛法을 이은 僧侶도 많았다.  前者를 事判僧(山林僧), 後者를 理判僧(工夫僧)이라고 했다.
  自然히 兩者間에는 特徵이 있게 되었다.  一部 事判僧에는 敎理에 어두운 凡僧이 있었고, 理判僧은 工夫에만 置重함으로써 佛敎의 外形的 發展에는 그다지 큰 寄與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兩者는 相互 補完의 關係에 있었다.  廢寺를 막음으로써 寺刹의 命脈을 이은 것은 事判僧의 功勞이며, 부처님의 慧光을 傳하고 佛法을 이은 것은 理判僧의 功勞였다. 
  그럼에도 解放後 한 때 比丘僧 帶妻僧의 다툼이 있었을 때 各其 理判僧․事判僧 比喩해 相互 批判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朝鮮王朝 5百年 동안 史上 類例없는 抑佛政策에도 不具하고 佛敎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理判․事判의 功이 아닌가.  그러나 理判․事判을 다 시도했지만 妙案이 없다면 그야말로 ‘理判事判’, 自暴自棄가 될 수 밖에 없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 佳人薄命 셀라비 2014.11.18 1794
63 刻骨難忘 [1] 셀라비 2014.11.19 1467
62 刻舟求劍 셀라비 2014.11.21 1443
61 肝膽相照 [1] 셀라비 2014.11.23 1576
60 渴而穿井 셀라비 2014.11.24 2124
59 感慨無量 셀라비 2014.11.25 1660
58 甘呑苦吐 셀라비 2014.11.26 1605
57 甲男乙女 셀라비 2014.11.27 1359
56 乾坤一擲 셀라비 2014.11.29 1430
55 乾木水生 셀라비 2014.11.30 1563
54 格物致知 셀라비 2014.12.01 1787
53 隔靴搔痒 셀라비 2014.12.02 1786
52 犬馬之勞 셀라비 2014.12.03 2001
51 犬馬之養 셀라비 2014.12.04 2043
50 結者解之 셀라비 2014.12.05 1886
49 結草報恩 셀라비 2014.12.06 2347
48 兼人之勇 셀라비 2014.12.08 2046
47 傾國之色 셀라비 2014.12.09 2192
46 經世濟民 LeeKyoo 2014.12.12 2108
45 鷄卵有骨 셀라비 2014.12.14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