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 臣 | 집 | 신하 | | | 주인과 다함께 생활하며 충성을 다하는 참모 |
가 | 신 | | | ||
가신(家臣)이란 옛날 中國이 봉건제도(封建制度)를 實施할 때 대부(大夫)階層에서 거느리고 있던 部下들을 뜻한다. 一種의 參謀인 셈이다. 大夫는 제후(諸侯)로부터 土地를 받았다. 그러나 워낙 넓어 管理를 위해 많은 신속(臣屬)들을 두었는데 그들을 통틀어 家臣이라고 했다. 家臣은 主人에게 온갖 忠誠을 다 바쳤다. 물론 그에 따른 對價는 充分히 支拂되었다. 家臣制度가 盛行한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였다. 家臣의 代表라면 단연 공자(孔子)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는 祖國 노(魯)나라가 어지럽자 일찌감치 제(齊)나라로 갔다. 그의 나이 35세때였다. 당시 齊의 大夫였던 고소자(高昭子)의 家臣이 되어 열심히 일한 結果 信任을 받게 돼 마침내 王인 경공(景公)을 만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가 家臣이 되었던 것은 自身의 政治的 理想을 實現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家臣을 둔 例가 있다. 高麗때 임금보다 더 큰 權力을 휘둘렀던최충헌(崔忠獻)이 자기 집에서 국사(國事)를 處理하면서 임금의 臣下와는 別途로 사신(私臣)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家臣이라면 國家와는 關係없이 어떤 勢力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指稱하게 되었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4 | 狼 藉 | 셀라비 | 2014.01.21 | 1682 |
183 | 猶 豫 | 셀라비 | 2014.04.23 | 1681 |
182 | 感慨無量 | 셀라비 | 2014.11.25 | 1679 |
181 | 街談港說 | 셀라비 | 2013.10.20 | 1676 |
180 | 換骨奪胎 | 셀라비 | 2014.01.13 | 1675 |
179 | 騎虎之勢 | 이규 | 2013.04.01 | 1675 |
178 | 兎死狗烹 | 이규 | 2013.06.14 | 1674 |
177 | 凱 旋 | yikyoo | 2014.06.11 | 1669 |
176 | 文化 | 이규 | 2012.12.03 | 1669 |
175 | 鷄鳴拘盜 | 이규 | 2013.05.27 | 1667 |
174 | 公 約 | 셀라비 | 2014.05.27 | 1666 |
173 | 復舊 | 이규 | 2012.11.05 | 1660 |
172 | 破廉恥 | 이규 | 2012.11.24 | 1658 |
171 | 錦衣夜行 | 셀라비 | 2014.06.02 | 1655 |
» | 家 臣 | 셀라비 | 2014.02.24 | 1653 |
169 | 膺懲 | 이규 | 2013.02.18 | 1653 |
168 | 官 吏 | 셀라비 | 2014.03.23 | 1649 |
167 | 誘 致 | 이규 | 2013.06.17 | 1648 |
166 | 師表 | 이규 | 2013.02.04 | 1648 |
165 | 雲 雨 | 셀라비 | 2013.11.02 | 1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