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 臣 | 집 | 신하 | | | 주인과 다함께 생활하며 충성을 다하는 참모 |
가 | 신 | | | ||
가신(家臣)이란 옛날 中國이 봉건제도(封建制度)를 實施할 때 대부(大夫)階層에서 거느리고 있던 部下들을 뜻한다. 一種의 參謀인 셈이다. 大夫는 제후(諸侯)로부터 土地를 받았다. 그러나 워낙 넓어 管理를 위해 많은 신속(臣屬)들을 두었는데 그들을 통틀어 家臣이라고 했다. 家臣은 主人에게 온갖 忠誠을 다 바쳤다. 물론 그에 따른 對價는 充分히 支拂되었다. 家臣制度가 盛行한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였다. 家臣의 代表라면 단연 공자(孔子)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는 祖國 노(魯)나라가 어지럽자 일찌감치 제(齊)나라로 갔다. 그의 나이 35세때였다. 당시 齊의 大夫였던 고소자(高昭子)의 家臣이 되어 열심히 일한 結果 信任을 받게 돼 마침내 王인 경공(景公)을 만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가 家臣이 되었던 것은 自身의 政治的 理想을 實現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家臣을 둔 例가 있다. 高麗때 임금보다 더 큰 權力을 휘둘렀던최충헌(崔忠獻)이 자기 집에서 국사(國事)를 處理하면서 임금의 臣下와는 別途로 사신(私臣)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家臣이라면 國家와는 關係없이 어떤 勢力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指稱하게 되었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24 | 輻輳 | 이규 | 2013.01.02 | 1100 |
423 | 恒産恒心 | 이규 | 2013.01.02 | 1098 |
422 | 蠶室 | 이규 | 2013.01.05 | 1129 |
421 | 燈火可親 | 이규 | 2013.01.07 | 1084 |
420 | 葡萄 | 이규 | 2013.01.09 | 1146 |
419 | 崩壞 | 이규 | 2013.01.13 | 1119 |
418 | 阿鼻叫喚 [2] | 이규 | 2013.01.14 | 1075 |
417 | 籠絡 | 이규 | 2013.01.15 | 1057 |
416 | 伯仲勢 | 이규 | 2013.01.16 | 1088 |
415 | 左遷 | 이규 | 2013.01.17 | 1127 |
414 | 出師表 | 이규 | 2013.01.18 | 1117 |
413 | 吳越同舟 | 이규 | 2013.01.19 | 1119 |
412 | 一瀉千里 | 이규 | 2013.01.20 | 1059 |
411 | 鳩首會議 | 이규 | 2013.01.21 | 1198 |
410 | 變姓名 | 이규 | 2013.01.22 | 1139 |
409 | 納凉 | 이규 | 2013.01.23 | 1088 |
408 | 汚染 | 이규 | 2013.01.24 | 1186 |
407 | 香肉 | 이규 | 2013.01.25 | 1051 |
406 | 波紋 | 이규 | 2013.01.27 | 1337 |
405 | 赦免 [1] | 이규 | 2013.01.27 | 1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