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暮途遠 | 날 | 저물 | 길 | 멀 | 나이가 늙었어도 할 일이 많음 |
일 | 모 | 도 | 원 | ||
楚의 平王 때 오사(伍奢)는 太子 건(建)의 태부(太傅-왕자의 양육관)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少傅-太傅 다음 벼슬)로 있었다. 費無忌는 奸臣이었다. 한 번은 太子를 위하여 秦에서 데려온 女子를 平王에게 권하고 아첨(阿諂)하여 王의 信任을 얻었다. 이 事實을 안 太子의 報復이 두려워 太子를 참소(讒訴)하였다. 女子에 빠져 버린 平王은 費無忌의 말만 곧이 듣고 太子를 國境으로 쫓아 버렸다. 또 平王은 太子가 叛旗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에는 太傅 伍奢를 꾸짖자 伍奢는 도리어 王의 그릇됨을 諫하였다. 이 때문에 伍奢는 유폐(幽閉)되고, 太子는 宋으로 逃亡갔다. 伍奢의 두 아들의 報復이 두려워진 費無忌는 太子의 陰謀는 그 두 아들의 조정이라 참언하였다. 그래서 伍奢와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吳로 逃亡쳤다. 그로부터 伍子胥는 復讐의 날을 기다렸다. 吳王과 公子 광(光)을 뵙고난 伍子胥는 公子가 王位를 넘겨다 보고 刺客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刺客을 刺客을 紹介하였다. 楚에서는 平王이 죽고 費無忌가 平王에 薦擧한 女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이 되었다. 그후 內分으로 費無忌는 被殺되고, 內分을 틈타 楚를 치던 吳王은 專諸의 칼에 죽고, 公子 光이 王位에 오르니 이가 吳王 합려(闔閭)다. 그후 伍子胥는 楚에 쳐들어가 平王의 墓를 파헤치고 屍體에 3백번의 매질을 가함으로써 아버지와 형의 怨恨을 풀었다. 이 사건에 대해 지나치다고 비난하자 伍子胥는 말했다. “나는 나이가 늙었어도 할 일은 많다(吾 日暮途遠).”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2 | 政經癒着 | 이규 | 2013.09.05 | 2193 |
221 | 渴而穿井 | 셀라비 | 2014.11.24 | 2191 |
220 | 鷄卵有骨 | 셀라비 | 2014.12.14 | 2184 |
219 | 肝膽相照 | 이규 | 2013.11.12 | 2179 |
218 | 紛 糾 | 이규 | 2013.09.25 | 2176 |
217 | 鷄鳴狗盜 | 셀라비 | 2014.12.19 | 2175 |
216 | 夜不閉戶 | 이규 | 2013.08.29 | 2172 |
215 | 蹴 鞠 | 이규 | 2013.07.16 | 2171 |
214 | 犬馬之心 | 이규 | 2013.09.27 | 2169 |
213 | 信賞必罰 | 셀라비 | 2013.10.27 | 2167 |
212 | 持 滿 | 이규 | 2013.11.28 | 2155 |
211 | 한자어의 연관성(聯關性) [2] | 이규 | 2012.12.08 | 2155 |
210 | 問 鼎 | 이규 | 2013.11.23 | 2155 |
209 | 犬馬之養 | 셀라비 | 2014.12.04 | 2153 |
208 | 兼人之勇 | 셀라비 | 2014.12.08 | 2150 |
207 | 高麗公事三日 | 셀라비 | 2015.04.02 | 2148 |
206 | 千字文 | 이규 | 2013.10.12 | 2145 |
205 | 泣斬馬謖 | 이규 | 2013.10.28 | 2139 |
204 | 人 倫 | 이규 | 2013.07.29 | 2139 |
203 | 疑心暗鬼 | 셀라비 | 2014.08.31 | 2128 |